단풍잎 짙게 물든 가을날, 대구에서는 파릇한 이파리가 돋아났다. 2세대 닛산 리프가 지난해 9월 첫 공개 이후 14개월 만에 한국 땅을 밟았다. 한국닛산은 11월 1일 대구 국제 미래자동차 엑스포에서 신형 리프를 국내 시장에 처음 공개하고 사전 계약을 시작했다. 2010년 세계 최초 양산형 전기차로 세상에 나온 리프는 높은 완성도와 내구성으로 전 세계 누적 판매량 37만 대(2018년 10월 기준)를 기록했다. 2018년 11월 기준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전기차다.
파격은 없었다. 모든 부분이 조금씩 진화했을 뿐이다. 전기차라는 정체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던 이전 디자인과는 달리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도심형 해치백 스타일을 입었다. 덕분에 1세대보다 자연스럽고 어른스러운 인상이다. V-모션 그릴, LED 부메랑 헤드램프와 같은 닛산 고유 요소로 브랜드 색채를 유지하고 입체적인 아이스 큐브 그릴로 참신한 스타일을 완성했다. 성숙한 생김새만큼 크기 성장도 눈에 띈다. 높이는 10mm 줄었지만, 길이와 폭은 각각 이전보다 35mm, 20mm 늘었다. 휠베이스는 변함없이 2700mm. 뒷좌석은 여전히 빠듯하지만 적재 공간 435L를 확보해 실용성을 어느 정도 살렸다.
110kW급 전기모터가 1세대보다 41마력, 6.7kg?m 강력한 최고출력 150마력, 최대토크 32.6kg?m 힘을 낸다. 환경부 공인 주행가능 거리는 231km. 이전 모델보다 100km 정도 늘었지만 현대자동차 코나 일렉트릭(406km), 기아자동차 니로EV(385km), 쉐보레 볼트 EV(383km)와 비교하면 크게 떨어진다. 전기차 고객에게 가장 예민한 요소인 주행거리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지적에, 닛산 아시아?오세아니아 세일즈 마케팅 총괄 빈센트 위넨 부사장은 한국인 하루 평균 주행거리(38km)를 고려하면 일상생활에 사용하기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부스 한 편에는 리프에 들어가는 e-페달 시스템을 체험하는 공간을 마련했다. e-페달은 일상주행 대부분을 가속페달 하나만으로 소화하도록 만든 회생제동 기술이다. 가속페달에 힘을 실으면 가속, 힘을 빼면 감속, 발을 떼면 정지다. e-페달을 사용하면 혼잡한 도심에서 브레이크 사용 빈도가 80~90% 감소한다.
한국닛산은 2세대 리프 출시로 수입 전기차 시장 1위를 노린다. 테슬라?재규어?아우디가 내놓는 고가 프리미엄 전기차를 제외하면 경쟁자는 BMW i3 정도다. 기본가격은 5000만 원 미만. 내년도 전기차 보조금이 올해 수준에 못 미친다면 어느 정도 가격부담이 예상된다. 인도는 내년 3월부터다.
세상이 변했다. 리프가 양산 전기차 서막을 연지 어느새 8년이 지났다. 대구 국제 미래자동차 엑스포 전시장에서는 테슬라 모델 S와 모델 X, 재규어 I-페이스, 현대 코나 일렉트릭, 기아 니로 EV와 같은 다양한 전기차가 관람객의 시선을 빼앗았다. 올해 9월, 국내 전기차 누적판매량은 2만 대를 돌파했다. 2016년 12월 1만 대를 달성한 뒤 불과 1년 9개월만에 거둔 기록이다. 코나 일렉트릭과 니로 EV와 같은 국산 모델이 국내 전기차 붐을 주도한다. 글로벌 출시 후 1년 이상 지나 국내에 찾아온 원조 전기차 리프가 맞이한 상황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이유다. 리프는 더는 전기차 새싹이 아니다. 전기차 시대를 주도하려면 특별한 무기가 필요하다.
전기차 그 이상, V2X
리프는 단순한 전기차가 아니다. 닛산이 제시하는 미래 자동차 비전 ‘닛산 인텔리전트 모빌리티’ 개념의 집약체다. 닛산 인텔리전트 모빌리티는 자동차와 사회가 통합하는 방식을 바꾸기 위한 닛산의 새로운 접근 방식이다. 닛산 V2X 사업개발부 총괄책임 류스케 하야시가 리프에 담긴 닛산의 비전을 이야기했다.
생소한 이름이다. V2X란 무엇인가?
‘Vehicle to Everything’의 줄임말이다. 리프를 비롯한 전기차를 거대한 이동식 배터리로 보는 프로젝트다. 전기차 배터리에 담긴 전력을 집이나 건물 혹은 다른 자동차에 전달?활용하고 삶의 질을 개선하는 방법을 연구한다.
연구는 현재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했나?
이미 상용화했다. 닛산 본사가 위치한 요코하마 아이마크 빌딩을 비롯해 여러 스마트 빌딩이 V2X를 기반으로 운영한다. 영국에서는 태양광 발전으로 충전한 전력을 전력회사에 되파는 수익모델도 운영 중이다.
V2X를 보편화하는데 가장 큰 과제는 무엇인가?
관건은 자동차, 충전기, 빌딩, 전력망 시스템의 순환이다. 전기차 충전기는 이미 정립된 규격이 존재하지만 빌딩과 전력망에는 아직 구체적인 규격이 없다. 이런 부분은 자동차 제조사가 아니라 전력망을 구축하는 건설사가 주도적으로 고민할 부분이다.
소비자가 얻는 이점은 무엇인가?
전력 사용에 선택권을 부여한다. 가격이 낮은 야간에 전력을 구매해서 주간에 사용할 수 있다. 국가에 따라서는 저렴한 야간 전력을 재판매해서 수익을 올리는 일도 가능하다. 무엇보다 전력 활용 측면에서 가치가 높다. 자동차를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거대한 배터리 팩으로 활용한다. 특히 자연재해가 빈번한 일본에서 이용가치가 크다. 재난 발생 시 일반적으로 3일 이내에 전력을 복구하는데, 전력 복구까지 전기차 전력을 활용하면 재난 발생 즉시 전력을 확보할 수 있다. 신형 리프의 40kWh 배터리는 일반 가정이 사나흘 동안 사용할 전력을 제공한다.
한국에서 V2X는 어떤 의미가 될까?
지금 당장 어떤 사업을 전개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아직 한국의 전력 시스템을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V2X는 어떤 사회에서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비전이라고 믿는다. 머지않아 한국 사회에 기여하는 V2X 모델 도입이 가능하리라 예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