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제곱은 a를 n번 거듭 반복하여 곱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기호로는 an과 같이 쓰고, a의 n 제곱이라고 읽는다. 이때 a는 거듭제곱의 밑, n은 거듭제곱의 지수라고 한다. 거듭제곱 특성 상 지수가 작을 땐 결과값이 그리 크지 않지만 곱셈을 거듭할수록 놀라운 속도로 자릿수를 늘려 나간다. 1 다음으로 큰 자연수 2만 하더라도 10제곱을 넘어가는 순간부터 아득해진다. 2의 100제곱은 자릿수를 세는 데에도 한참이 걸린다.
폴스타의 연식변경, 즉 상품성 개선은 마치 거듭제곱을 보는 듯하다. 이번에 만난 2024년형 폴스타 2도 마찬가지. 지난해 2023년형을 내놓을 때만 하더라도 변화가 크게 와닿지 않았는데, 단 두 번째만에 놀라운 모습으로 진화했다. 출력 높이고,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 개선하고, 지속가능성을 위한 온실가스 배출량을 낮췄다. 폴스타가 줄인 온실가스가 지구에 끼칠 나비 효과를 생각하면 과연 이번 연식변경은 거듭제곱만큼 변화가 크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폴스타는 상품성 개선 주기가 1년으로 빠른 편이다. 그 배경에는 ‘제로 프로젝트’가 있다. 이 계획에는 탄소 배출 제로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폴스타의 의지를 담았다. 2030년까지 기후 중립 자동차를 생산하고, 2040년에는 기업과 관련한 모든 분야에서 기후 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내용이 골자를 이룬다. 이를 위해 지속가능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개선 사항이 있으면 지체 없이 조치한다. 여느 자동차 제조사와 달리 연식변경 주기가 짧은 이유다.
가령 2023년형은 배터리 케이스를 운반할 때 사용하는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바꾸고, 저탄소 알루미늄 휠 개발을 통해 자동차 1대를 만들 때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1.35t 줄였다. 2024년형은 배터리 생산공정을 개선해 자동차 1대당 온실가스 배출량을 1.1t 더 낮췄다. 이제 폴스타 2 싱글모터 모델 1대를 만들 때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22.4t에 불과하다. 참고로 듀얼모터는 23.1t이다.
외모는 이전 모델과 다른 점을 찾기 어렵다. 디자인을 크게 바꾸면 차체 패널 주조 틀을 비롯해 새로 만들어야 할 부분이 한두 개가 아니다. 이는 곧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로 이어진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는 말이지만, 폴스타와 볼보의 모델 생애 주기가 긴 이유는 지속가능성을 깊이 생각하는 기업 마인드때문일지도모른다.2024폴스타2에서 눈에 띄는 요소가 하나 있다. 헤드램프 사이에 자리한 스마트존이다. 원래 그릴이 있던 자리에 전면 카메라와 중거리 레이더를 포함한 첨단 안전 기술을 한데 모아 집어넣었다. 폴스타는 “기술적 진화를 시각화하고, 미니멀 디자인 정체성을 한층 강화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동력 성능 변화는 세대교체가 부럽지 않다. 싱글모터는 앞바퀴굴림에서 뒷바퀴굴림으로 구동 방식까지 다시 손봤다. 최고출력은 299마력으로 이전보다 30% 개선했다. 최대토크는 48% 올라 50kg·m에 달한다. 그 결과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을 기존보다 1.2초 앞당긴 6.2초 만에 끝낸다. 최고시속은 205km다. 배터리는 78kWh로 이전과 같다.
그런데 놀랍게도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가 449km로 32km 늘었다. 인버터 소재를 규소에서 실리콘 카바이드로 바꿔 에너지효율을 높일 수 있었다. 제원 수치의 변화는 쉽게 체감할 수 있었다. 출발과 동시에 한결 가뿐한 발걸음이 인상적이다. 폴스타 2는 원하는 속도까지 쉼 없이 숫자를 높였다. 시트에 파묻힐 만큼 폭발적이진 않지만 가볍고 경쾌한 감각에 덩달아 기분이 산뜻해졌다. 정숙성과 승차감은 경쟁 차종 가운데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바람 소리를 치밀하게 틀어막고, 빼어난 승차감이 조화를 이뤄 안락한 실내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런데 목적지 주변에 다다라 산길을 오르자 폴스타 2는 반전 매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운전이 재미있다. 가속과 선회, 제동 모두 높은 응답성을 보여준다. 움직임에 망설임이 없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운전자의 요구에 맞춰 빠르게 속도를 늦추고,깨끗한 궤적을 그린 뒤, 곧장 반듯한 자세로 고쳐 잡고 코너를 빠져나간다. 균형 잡힌 운동 성능 덕분에 마치 BMW 3시리즈를 운전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앞뒤 무게중심을 48:52로 맞췄다는 폴스타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요즘 자동차 시장은 트렌드에 굉장히 민감하다. 전기차는 더더욱 심하다. 넓은 실내공간을 위해 SUV를 흉내 낸 커다란 크로스오버가 난무하고, 운동 성능은 날쌘 가속이면 충분하다는 듯 출력 경쟁을 펼친다. 더 긴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를 위해 무게는 상관 않고 배터리 용량을 키우는 것도 문제다.
폴스타는 유행을 쫓기보단 자동차의 변치 않는 본질 추구에 무게를 더 싣고 있다. 폴스타 2는 차체크기, 공간, 운동 성능 등을 미루어 보았을 때 바람직한 콤팩트 세단에 가장 가까운 전기차다. 지나치거나 부족함이 전혀 없다. 이번 연식변경을 통해 콤팩트 세단의 본질에 한 발짝 더 다가섰다. 더불어 콤팩트 ‘스포츠’ 세단으로 발돋움했다. 만약 콤팩트 전기 세단을 만들어 팔고 싶다면, 고개를 들어 폴스타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북극성이라는 뜻의 이름처럼 항상 올바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을 테다.
글 이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