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에서 선으로 확장된 페라리 국내 네트워크
페라리가 국내 2호 전시장을 열고 288 피스타를 국내 최초 공개했다
2019-03-22 14:48:52 글 김성래
2주 째 자욱한 미세먼지 속에서 지내던 3월 아침, 서울역으로 향했다. 분명 KTX에 올라탔는데 도착하고 나니 국제선 여객기에서 내리지 않았나 싶었다. 쾌청한 하늘에 흰구름이 떠다녔다. 해변에 자리잡은 높다란 빌딩에도 파란하늘이 선명하게 비쳤다. 스모그 자욱한 지역을 벗어나고 나니 모처럼 탁 트인 시야가 펼쳐졌다. 당일치기 지방출장이 지중해 휴양지 출장처럼 싱그럽던 이유다.
센텀시티에 들어섰을 때, 높다란 빌딩 숲 사이로 새빨간 페라리 488 GTB 한 대가 지나갔다. 쾌청한 세계에서 평범한 진리를 깨달았다. ‘하늘은 파래야, 페라리는 빨개야 제격이지.’ 어떤 포토그래퍼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진 속 미모는 8할이 조명빨이라던 말. 비단 사진 속에만 적용되는 진리는 아닌가 보다. 눈부신 햇살 아래서 피 끓는 로쏘 코르사 레드는 100도쯤 더 뜨겁게 이글거렸다. 열정과 마천루의 도시, 부산은 국내 어느 지역보다 슈퍼카가 어울리는 곳이었다.
페라리가 국내 2호 전시장을 이곳에 연 이유다. 서울에서 가장 먼 도시에 거점을 마련하면 판매 및 서비스 범위가 2배로 확장된다. 특히나 수입차 전시장이 즐비한 곳이라면 효과는 더할 나위 없을 터. 해운대구 중동 거리에는 수많은 수입차 전시장이 늘어서 있었고, 그 한 가운데 도약하는 말 엠블럼이 자리잡고 있었다.
전체면적 562m2 전시장에는 휘황찬란한 말 두 마리가 빨간 엔진을 더 붉게 달굴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GTC4 루쏘 T와 포르토피노 전시차 뒤 편에는 세상 고급스러운 고객 라운지 공간이 보였다. 전시장 옆에는 워크베이 2개를 갖춘 서비스센터가 자리잡았다. 이탈리아 본사에서 교육·훈련을 마친 전문 테크니션들이 전용 장비를 이용해 점검 및 수리를 담당한다.
개관식에 참석한 페라리 극동 및 중동지역 총괄 지사장 디터 넥텔은 “페라리 부산 네트워크 개관으로 이전부터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페라리에 큰 사랑과 관심을 보내준 부산 및 영남지역 고객을 이제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페라리는 이미 지난해 7월 일주일 동안 부산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1층에서 포르토피노 팝업 전시를 진행했다. 멀리서도 큰 사랑(이라고 쓰고 구매라고 읽는다)을 보내준 부산 고객에 대한 페라리의 각별한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었다.
페라리의 부산 사랑은 여기 끝나지 않았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V8 미드십 페라리 스페셜 모델의 최신판이자, 챌린지 스트라달레·스쿠데리아·스페치알레 뒤를 잇는 488 피스타를 이곳에서 국내최초 공개했다. 최고출력 720마력, 0→시속 100km 가속시간 2.9초에 달하는 도로용 경주차가 해운대 거리에서 매혹적인 자태를 드러냈다.
공간 속 특정 위치만 가리키는 가장 기본적인 조형 단위가 점이다. 점이 2개 이상이면 그 사이를 이어 선을 만들 수 있다. 점은 위치일 뿐 크기도 방향도 길이도 부피도 없다. 하지만 선은 위치와 방향과 길이를 갖는다. 선이 여럿 모여 얼기설기 엉키면 그물망이 된다.
디터 넥텔 지사장은 이날, 페라리 부산 ‘네트워크’를 열게 된 사실에 무척이나 기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적어도 국내에서 페라리는 고작 점 2개를 찍었다. 경부선 KTX 철로와 비슷할 긴 선을 하나를 그물망이라고 부르기에는 아쉬운 감이 있다. 매년 큰 폭의 성장을 기록하는 국내 슈퍼카 시장을 생각하면 언젠가 근사한 판매·서비스 네트워크를 완성할 날을 기대해볼 만하다. 분명한 점은 더 많은 페라리가 달릴수록, 더 많은 전시장이 생길수록 우리네 도로는 더 아름다워진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