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의 진정한 라이벌, 맥라렌
2016-04-22 10:50:20 글 박영준(단국대 법과대학교수, 자동차 칼럼니스트)
그랑프리 우승을 밥 먹듯 하던 F1팀이 페라리처럼 레이싱카에 기초한 수퍼카를 만들게 되는데 바로 맥라렌 자동차의 시작이다
650S로 잘 알려진 맥라렌은 원래 F1 그랑프리에서 페라리와 쌍벽을 이루는 유명 레이싱 팀이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것은 F1 맥라렌 팀은 그 동안 그랑프리에서 한 번도 자신들의 엔진을 쓴 적이 없다는 점이다. 650S에 얹은 V8 3,000cc 트윈터보 엔진(M838T)만 해도 배기량 3~4L 부문 ‘올해의 엔진 어워드’ 타이틀을 차지할 정도로 뛰어난 기술력을 지녔지만, F1 그랑프리에 자사의 엔진을 내놓은 적이 없다. 현재 F1 맥라렌 팀은 혼다의 엔진을 쓴다.
이는 맥라렌의 복잡한 역사와 관련 있다. 뉴질랜드 출신의 브루스 맥라렌은 1959년 F1 쿠퍼 팀에 합류, 그 해 US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차지한 위대한 드라이버다. 그는 1963년 자신의 자동차 경주팀인 맥라렌 팀을 결성했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 F1 맥라렌 팀의 시작이다. 맥라렌 팀은 1966년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데뷔전을 치르고, 2년 뒤 벨기에 그랑프리에서 첫 우승을 거두며 전성기를 맞이한다.
맥라렌 P1
그러나 1970년 팀의 창설자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브루스 맥라렌이 불행하게도 사고로 사망한다. 다행히 같은 뉴질랜드 출신으로 팀 드라이버였던 데니 흄을 중심으로 구성원들이 똘똘 뭉쳤지만, 연이어 부진한 성적을 내며 1980년대 들어 심각한 재정위기를 맞는다. 그러나 1981년 론 데니스가 팀 매니저로 부임하고 1985년 TAG(the Techniques d'AvantGarde Group) 그룹에 인수되어 TAG 맥라렌 그룹으로 거듭나며 다시 부활하게 된다. 당시 맥라렌의 F1 머신은 니키 라우다, 알랭 프로스트, 아일톤 세나 등 스타 드라이버들을 태우고 1984년에서 1991년까지 8년 동안 무려 7번이나 F1 월드 챔피언십을 거머쥐었다.
맥라렌 팀이 F1 우승을 밥 먹듯 하던 1989년, 론 데니스는 페라리를 염두에 두고 F1 머신에 기반을 둔 수퍼카를 생산하는 맥라렌 자동차(McLaren Cars)를 자회사로 설립했다. 이후 1994년 내놓은 ‘맥라렌 F1’은 최고속도 387km/h를 자랑하는 최고의 수퍼카였다. 그러나 이러한 초고성능은 일반 도로에서는 제대로 발휘되기 어려웠고, 시판 당시 63만5,000파운드(11억5,000만원)라는 너무나 높은 차 값 때문에 상업적으로는 실패한다. 원래 맥라렌 F1을 300대 한정 생산할 계획이었지만, 1998년까지 100여 대만이 만들어졌다.
고유모델로 쓰디쓴 실패를 겪은 맥라렌은 F1에서 메르세데스-벤츠와 협력한 것을 계기로 새로운 수퍼카를 함께 개발했다. 바로 ‘메르세데스-벤츠 SLR 맥라렌’이 그 주인공이다. 2003년 등장한 이 차는 2010년까지 약 1,400대가 팔렸다.
2009년 맥라렌은 투자자를 끌어들여 새로운 회사(McLaren Automotive)로 다시 설립됐다. 이 때문에 현재의 맥라렌 자동차는 F1 맥라렌 팀과 법적으로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다른 회사가 되어버렸다.
새로운 맥라렌 자동차는 자체 모델 생산에 집중한다. 2011년, 과거의 맥라렌 F1과 같은 초고가 수퍼카가 아니라, 16만5,000파운드(3억원)의 기본가격으로 베이비 페라리나 베이비 람보르기니와 경쟁하는 MP4-12C를 내놓았다. 맥라렌 F1과 같은 카본파이버 보디에 강력한 V8 3,800cc 트윈터보 엔진을 장착한 이 차는 고성능과 저렴한(?) 가격으로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자신감을 회복한 맥라렌은 과거 ‘맥라렌 F1’과 같은 초고가 수퍼카를 다시 한 번 만들기로 했다. 다만 이번에는 하이브리드 엔진이 주 무기였다. 그 결과 2013년, V8 3,800cc 트윈터보 엔진과 전기모터를 조합해 903마력을 내는 강력한 수퍼카 맥라렌 P1이 데뷔한다. 375대를 한정 생산한 P1은 100만파운드(18억1,000만원)라는 엄청난 고가에도 불구하고 등장과 동시에 모두 팔렸을 정도로 큰 인기를 모았다. 맥라렌은 2014년 MP4-12C의 후속모델인 650S를 발표한다. 12C와 같은 엔진에 P1을 연상시키는 카본파이버 보디가 특징인 650S는 현재 성공적인 판매를 이어가는 중이다.
과거의 복잡다단했던 역사를 되짚어보면 F1 맥라렌 팀이 맥라렌 엔진을 얹고 경기장을 질주하는 날이 머지않아 올 것 같다. 마치 페라리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