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규어의 전신, 스왈로우 사이드카
2016-05-17 08:25:05 글 박영준(자동차 칼럼니스트, 단국대 법과대학 교수)
SS재규어
지난 번에는 현대차의 럭셔리 브랜드 제네시스의 엠블럼과 영국의 스포츠 세단 벤틀리의 그것이 비슷하다고 썼다. 그리고 과거에는 날개 모양의 엠블럼이 적지 않았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이번달에 소개할 브랜드 역시 날개 모양의 엠블럼을 사용했던 초창기 영국의 자동차 회사다. 재규어의 전신인 스왈로 사이드카(Swallow Sidecar)가 그 주인공으로 흔히 약칭인 ‘SS자동차’로 불렸다. SS자동차는 날개 모양의 엠블럼 외에 제네시스와 또다른 공통점이 있으니, 나중에 자동차 모델명을 회사 이름으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윌리엄 웜슬리(William Walmsley, 1892~1961)와 윌리엄 라이온즈(William Lyons, 1901~1985)는 영국 블랙풀의 같은 동네에서 살았고, 이름도 같아서 친하게 지냈다. 열살 어린 윌리엄이 만 21살이 되던 생일날 두사람은 동업을 하기로 의기투합했다. 그들은 스왈로 사이드카회사를 만들어 소박한 작업장에서 오토바이 사이드카를 제작해 판매했다. 사업은 순조롭게 발전하여 윌리엄 웜슬리의 아버지가 사들인 큰 건물로 회사를 옮길 수 있게 되었다.
두 윌리엄은 사이드카 제작으로 익힌 판금기술을 바탕으로 서서히 커져가던 자동차 시장으로 눈길을 돌려 차체 제작에 뛰어들었다. 당시에는 엔진, 섀시, 차체를 만드는 회사들이 나누어져 있었는데, 차체 전문가를 코치빌더(마차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의미)라고 불렀다.
1927년 첫차 오스틴 7 스왈로를 발표했다. 영국의 국민차로 불리던 오스틴 7의 섀시에 라이온즈가 설계한 보디를 얹은 이 차는 175파운드(당시 30만원)라는 저렴한 가격에 고급스러운 외관을 갖추어 큰 인기를 끌었다. 이에 힘입어 회사이름을 ‘스왈로 사이드카 & 코치빌딩’(Swallow Sidecar and Coachbuilding)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오스틴 외에 울즐리(Wolseley), 모리스(Morris), 스위프트(Swift), 알비스(Alvis), 피아트(Fiat) 등 다양한 회사의 섀시를 바탕으로 개성 있는 차들을 선보였다.
첫차를 발표한 지 1년 뒤에 본사를 코벤트리(Coventry)로 옮기고, 회사이름도 스왈로 코치빌딩으로 바꿔 본격적으로 완성차 생산에 뛰어들었다. 첫차는 1931년 런던 모터쇼에서 소개된 SS-I이었다. 6기통 엔진의 이 차는 310파운드(당시 54만원)의 저렴한 가격에 1,000파운드(당시 175만원) 수준의 고급차 같은 외관과 성능을 갖추어 큰 인기를 끌었다. 210파운드(당시 37만원)짜리 4기통 모델 SS-II도 성공을 거두었다.
사업이 날로 번창하면서 창업자 사이에 골이 깊어졌다. 라이온즈는 회사를 주식회사로 전환해 크게 키워야겠다고 생각한 반면 웜슬리는 내실을 다지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결국 1935년에 웜슬리는 자신의 지분을 갖고 나가 카라반과 트레일러를 제작하는 에어라이트 트레일러(Airlite Trailer Company)를 설립했다. 혼자 남은 라이온즈는 SS자동차로 이름을 바꾸고, 주식을 공개했다.
SS자동차의 첫 자동차는 날렵한 외관에 6기통 엔진을 얹은 2인승 오픈 스포츠카 SS90이었다. 최고 90mph(145km/h)을 낼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스탠다드에서 공급받은 6기통 2.5L 사이드밸브 엔진(70마력)의 성능이 좋지 않아 고객들로부터 외면을 당했다. 라이온즈는 즉시 엔진 전문가를 영입해 6기통 2.5L 오버헤드 밸브(OHV) 방식 102마력 엔진을 개발해 1936년 SS재규어를 발표했다. 이 차는 강력한 엔진과 고급스러운 외관으로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1938년에는 2인승 오픈 스포츠카 SS100을 발표했다. 최고속도 100mph(160km/h)로 달릴 수 있는 이 차 역시 커다란 인기를 끌었고, 지금도 수집가들이 탐내는 대표적인 클래식카로 꼽히고 있다.
1946년형 SS재규어 2.5L 설룬
1945년 3월 회사 이름을 재규어로 바꾸었다. SS라는 이름이 제2차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나치 친위대(Schutzstaffe)를 떠올린다는 이유에서였다. 새 이름은 모델명인 재규어로 결정됐다. 이런 사연으로 오토바이 사이드카 제작에서 출발한 ‘제비’는 재규어로 변신해 먹잇감을 덮치는 늘씬한 엠블럼을 달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