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모습 속에서 개성 찾기
자동차 메이커들이 디자인을 통일하고 있다. 브랜드 정체성를 강화하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차종을 구분하기 어려워 보는 사람은 불편하기만 하다
2016-09-05 08:05:00 글 김준혁 기자
최근 들어 브랜드 정체성을 강화한다는 이유로 디자인을 비슷하게 통일하는 메이커가 많아지고 있다. 예전에는 소수였으나 지금은 너도나도 따라해 유행 아닌 유행이 되어버렸다. 장점은 특정모델을 보고 브랜드를 쉽게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차를 잘 모르는 사람도 프런트 그릴만 보고 아우디인지 BMW인지 맞힐 수 있다. 3시리즈인지 A6인지 차종은 알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이런 장점 때문에 많은 메이커들이 디자인을 통일하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차가 디자인을 비슷하게 맞추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제는 다른 나라 메이커들도 유행에 동참한다. 단점도 있다. 모두가 인정할 정도로 디자인이 멋지면 괜찮지만 이상한 디자인이 나오면 생산모델 전체가 못생겨져버린다. 이때는 브랜드 정체성이 나쁜 쪽으로 흘러갈테니 공연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 꼴이 되고 만다.
뒤쪽에 붙은 이름을 확인해야 할 정도로 닮은꼴 차들이 넘쳐나는 세태를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전체주의’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전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고, 개인은 전체 속에서 존재가치를 찾는다는 전체주의는 좋지 않다고 배웠는데… 이상하다.
2013년 6세대 S-클래스가 등장한 이후 벤츠는 한층 우아하고 고급스러워졌다.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독일산 라이벌들을 멀찍이 따돌릴 만큼 벤츠의 디자인은 성공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S-클래스의 디자인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던 것인지 벤츠는 다른 라인업에도 S-클래스와 유사한 디자인을 적용한 것이다.
2014년 출시된 4세대 C-클래스는 S-클래스의 디자인을 채택해 파란을 일으켰고, 그 후광 덕분인지 놀라운 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사실 S-클래스와 C-클래스는 실루엣과 느낌이 비슷할 뿐 똑같다고 할 수는 없다(헤드램프와 테일램프를 빼고).
하지만 올해 초 5세대 E-클래스가 등장한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S-클래스와 C-클래스를 반씩 섞은 듯한 E-클래스가 나온 뒤 S, E, C-클래스가 비슷해져버린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볼륨감 있는 보디라인과 물방울 형태의 헤드램프 때문이다. 헤드램프 안의 LED 주간주행등이 다를 뿐 3대의 세단은 꼭 닮았다. 그런데 이를 두고 뭐라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디자인이 너무 멋지기 때문이다.
애스턴마틴의 플래그십 모델 뱅퀴시와 DB11에게 자리를 내주고 은퇴한 DB9는 얼굴이 비슷하다. 프론트 그릴 때문이다. 뱅퀴시는 사다리꼴 형태이고, DB9는 역사다리꼴이다. 범퍼는 뱅퀴시가 더 고성능차라는 것을 내세우고 싶은지 DB9보다 훨씬 과격하게 생겼다.
옆쪽과 뒤쪽은 차이가 많아서 구별하기 쉽다. 뱅퀴시는 수퍼카 원-77을 연상케 하는 주름진 보디라인을 특징으로 내세우고, 뒤쪽도 원?77과 흡사한 ㄷ자 형태의 테일램프를 갖고 있다. 이 디자인은 새로 나온 DB11에도 적용돼 앞으로 DB11과 뱅퀴시가 헷갈릴지도 모르겠다.
마세라티에서 단 둘뿐인 세단, 기블리와 콰트로포르테는 처음 보면 굉장히 비슷하지만 그 유사성이 다른 메이커보다는 덜하다. 하지만 프론트 미드십에 엔진을 놓기 위해 길게 뽑은 보닛과 어깨뽕을 넣은 것처럼 힘을 준 숄더라인은 구별이 쉽지 않다. 앞펜더에 뚫린 3개의 공기구멍과, 리어펜더의 숄더라인도 똑같다.
나머지 부분은 개성이 뚜렷하다. 마세라티를 상징하는 프론트 그릴의 경우 콰트로포르테는 볼륨감 있게 팽창해 있고, 기블리는 정반대다. 헤드램프는 기블리가 좀더 험상궂게 생겼다. 반대로 뒤쪽은 기블리가 가볍게 생긴데 반해 콰트로포르테는 잔뜩 힘을 준 모습이다. 사진을 보면 비슷하게 생겼지만, 실물은 콰트로포르테에서 뿜어져 나오는 ‘오라’가 엄청나다. 둘의 차이는 오라라는 단어로 압축할 수 있다.
맥라렌 570S / 650S / 675LT : 90%
1~2년 사이에 라인업을 크게 늘린 맥라렌은 가장 약한(?) 570GT부터 얼마 전 단종된 하이퍼카 P1까지 똑같은 플랫폼에 코드명 M838T의 V8 3.8L 트윈터보 엔진을 사용한다. 출력과 섀시 세팅을 달리해 고성능 GT, 스포츠카, 수퍼카, 하이퍼카의 특성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뿌리가 같기 때문인지, 맥라렌은 전문가도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외관이 비슷하다. 찬찬히 살펴보면 제각기 특징이 있긴 한데, 뒤돌아서면 잊어버릴 정도로 그 차이가 미미하다. 각 모델의 차이는 프론트 범퍼에서 시작된다. 스포츠 시리즈인 570S와 570GT의 프론트 범퍼는 각이 많다. 굳이 비유하자면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같은 각진 흡기구를 갖고 있다. 570S와 570GT의 차이는 뒷유리에 있다. 570GT는 뒷유리를 옆으로 열고, 570S는 수직으로 떨어진다. 이 부분을 빼고는 외형적으로 똑같다.
수퍼 시리즈인 650S와 675LT는 범퍼가 맹수의 송곳니를 닮았다. 헤드램프 끝에서 시작된 라인이 범퍼까지 파고들어 공기를 더 많이 빨아들일 수 있다. 뒤쪽의 차이는 더 분명하다. 스포츠 시리즈의 테일램프는 유선형이고, 수퍼 시리즈는 얇은 가로형 띠로 되어 있다. 여기서도 650S와 675LT의 차이가 발생한다. 675LT는 LT(long tail)라는 이름처럼 리어윙이 크고 길다. 머플러도 원형이어서 좀더 박력 있어 보인다. 상대적으로 650S는 얌전한 모습이다. 길게 설명했지만, 뒤쪽을 제외하고 맥라렌의 5가지 모델을 구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르노 메간 에스테이트 / 탈리스만 에스테이트 : 90%
르노삼성 SM6가 유럽에서는 르노 탈리스만으로 팔린다. 탈리스만에는 에스파스에서 시작된 르노의 새 디자인이 적용되었다. 헤드램프에 연결된 커다란 프론트 그릴과 ㄷ자 형태의 LED 주간주행등을 포함한 헤드램프, 양쪽이 연결된 듯한 테일램프가 르노의 새로운 디자인 언어다. 그러다 보니 새로 나오는 차들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왜건형인 탈리스만 에스테이트와 메간 에스테이트가 대표적이다. 차체는 탈리스만이 훨씬 크지만 전체적인 윤곽과 비율을 보면 구별이 쉽지 않다. 구분하는 방법은 프론트 그릴의 패턴과 범퍼에 박힌 안개등 주위를 살피는 것이다. 메간이 탈리스만보다 더 역동적으로 생겼다.
결론적으로 두 모델은 굉장히 잘생겼다. 잘 만든 디자인 하나가 왜건까지도 멋져 보이게 하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링컨의 크로스오버 SUV, MKC와 MKX는 이름만큼이나 디자인도 헷갈린다. 외관뿐만 아니라 실내까지 거의 똑같다. 실내는 센터콘솔과 조수석쪽 대시보드를 살펴보지 않으면 어떤 차인지 알아 맞히기 어렵다. 외관에서는 링컨을 상징하는 스플릿 윙 프론트 그릴과 이 그릴에 연결된 헤드램프 때문에 생김새가 비슷하다.
덩치는 MKX가 훨씬 크다. 그런데도 그릴과 헤드램프, 프론트 범퍼의 비율이 비슷해 MKC와 MKX를 떼어놓고 보면 구별이 쉽지 않다. 측면도 마찬가지다. 앞뒤 펜더에 깊게 파인 캐릭터 라인, 숄더라인에 달린 사이드미러까지 판박이다. 뒤쪽에서는 트렁크의 절개선과 테일램프의 디자인이 달라서 그나마 차별성이 생긴다. MKC는 트렁크를 열 때 테일램프가 함께 들리고, MKX는 그렇지 않다. 그리고 테일램프도 더 크다.
재규어는 예전에도 디자인이 비슷했다. 하지만 이안 칼럼이 수석 디자이너로 온 뒤 그 증상이 더 심해졌다. 그 결과, 최신모델인 XE, XF, F-페이스가 굉장히 닮았다. 세단인 XE와 XF는 측면 그린하우스 부분과 크기를 제외하면 쌍둥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그중 앞모습이 제일 심하다. 프론트 그릴과 헤드램프, 범퍼의 비율이 거의 같고, 보닛의 캐릭터 라인, 헤드램프는 판박이다. 프론트 범퍼의 흡기구 정도가 다르다(이것마저도 비슷하다). 뒤쪽도 테일램프의 디테일만 차이날 뿐이다. 차이름이 궁금하면 뒤쪽 로고를 살피는 것이 필수다.
실내도 계기판과 센터페시아의 송풍구 정도만 다르다. 재규어 특유의 곡면 디자인, 가지런한 센터페시아 버튼, 다이얼 형태의 기어노브 등을 공유한 듯하다. 계속 이런 추세로 간다면 새로 나올 XJ도 비슷할 것이다.
아우디차들은 외관이 그 어떤 메이커보다 비슷하고, 그만큼 브랜드 정체성이 강하다. 최근 들어 쿠페, 세단, SUV 등 라인업끼리 디자인을 맞추는 방식으로 정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실내는 갈수록 닮아가 차종 구분이 어려울 정도다. 대표적인 예가 세단인 A4와 대형 SUV Q7이다. 12.3인치 버추얼 콕핏, 대시보드에 매달린 태블릿PC 스타일의 디스플레이, 대시보드를 가로지르는 긴 송풍구, MMI 컨트롤러와 팔받침대 형태의 기어노브 등 말하지 않으면 어떤 쪽이 A4이고 Q7인지 알기 어렵다.
굳이 차이점을 찾자면 Q7의 센터콘솔이 좀더 두껍고, 공조장치와 버튼의 배열도 다르다. 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찾아낸다면 〈탑기어〉에 알려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