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안전성, 어떻게 평가하나?
2016-09-05 15:42:36 글 제이슨 홍
우리나라 자동차 구입 고객 10만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동차를 구입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안전성’이었다. 아무리 편의장비가 많고 잘 달린다고 해도 안전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면 사고 싶지 않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사람 생각은 다 비슷해서 외국도 마찬가지다. 값도 싸고, 성능도 일취월장하고 있는 중국차가 세계 시장에서 발붙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도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국민의 안전과 교통사고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 각국의 정부는 ‘신차 안전도 평가 프로그램’(New Car Assessment Program, 이하 NCAP)을 운용하고 있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차를 대상으로 충돌 및 제동 안전성 등을 테스트해 그 결과를 홈페이지나 언론매체 등을 통해 공개하고 있다.
NCAP은 1979년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인 미국에서 시작됐다. 정부기관인 운수성 산하 고속도로 교통안전협회(National Highway Traffic Safety Administration, NHTSA)가 자동차 제조사들로 하여금 더 안전한 차를 만들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1979년 5월 21일 처음 실시된 첫 테스트는 차를 56km/h의 속도로 벽에 정면충돌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NHTSA의 안전성 평가 프로그램은 전세계 자동차 메이커에 커다란 자극제가 됐다. 미국 시장에서 차를 팔기 위해서는 ‘미연방 자동차 안전기준’(Federal Motor Vehicle Safety Standard, FMVSS)을 만족시켜야만 했기 때문이다.
유럽은 1997년 NCAP을 도입했다. 영국 운수성 산하 연구소에서 처음 실시했고, 유럽연합 국가 대부분이 그 결과를 공유하게 됐다. 유로 NCAP(Euro NCAP)의 평가항목이나 방법은 미국 NCAP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밖에 호주, 일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도 NCAP을 운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9년 처음 이 제도를 도입했고, 2015년엔 수입차 6종을 포함해 12개 모델을 대상으로 안전성 테스트를 했다.
글로벌 NCAP라는 단체도 있다. 전세계를 대상으로 안전한 차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2011년 NCAP 시행 국가들이 만든 협의체다. 대표적인 NCAP와 평가항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IIHS Safety Test & NHTSA NCAP (미국)
NCAP 종주국인 미국은 2개의 기관에서 안전성 테스트를 실시하고 있다. 처음 NCAP을 실시한 NHTSA와 미국 보험사들이 만든 비영리기관인 고속도로 안전보험협회(Insurance Institute for Highway Safety, IIHS)가 그것이다.
정부기관과 민간단체라는 차이가 있지만, 둘 다 안전한 차를 만들어 교통사고 피해를 줄이자는 똑같은 목표를 갖고 있다. NHTSA는 별의 개수로 등급을 매기고(별 5개가 만점), IIHS는 좋음(Good), 양호(Acceptable), 보통 (Marginal), 낙제 (Poor) 등 4단계로 표시한다.
두 기관에서 실시하는 테스트는 조금 차이가 있다. NHTSA는 FMVSS(연방자동차안전기준)에서 정한 평가항목에 초점을 맞춘다. 56km/h의 속도로 콘크리트벽을 박는 정면충돌 테스트가 대표적이다. 여기에는 차가 전복되는 상황을 가정한 롤오버 테스트(Rollover test)도 포함된다. 2003년 추가된 테스트로, 차가 전복되는 몇가지 상황을 만들어 실제로 차를 굴린다. SUV와 픽업트럭이 많이 팔리는 미국에서는 전복사고가 빈번하다. NHTSA에 따르면 1년에 1만명 가까운 사람이 전복사고로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IIHS는 정면충돌 테스트에 집중한다. NHTSA보다 훨씬 조건이 가혹한 오버랩 충돌 테스트를 2가지 방법으로 실시한다. 고정벽에 자동차 앞면의 절반만 충돌시키는 ‘모더레이트 오버랩 충돌 테스트 (Moderate Overlap crash test)와 전면의 25%를 충돌시키는 ‘스몰 오버랩 충돌 테스트(Small Overlap crash test)가 그것이다.
실제사고는 정면충돌보다는 차체의 일부분이 충돌하는 경우가 많아 IIHS가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두 테스트 모두 64km/h의 속도에서 진행된다. 2012년부터 실시되고 있는 스몰 오버랩 충돌시험의 경우 ‘세계에서 가장 가혹한 테스트’로 꼽힌다. 이 테스트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는 충격이 고루 분산되고, 운전자의 하체까지 잘 보호해야 한다.
스몰 오버랩 충돌시험이 실시되기 전에 설계된 차는 이 테스트를 통과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다. 2012년 실시된 첫 테스트에서 3개의 차종만이 양호(Acceptable, A) 이상의 등급을 받았을 정도다. 4년이 흐른 지금도 A등급 이상을 받기는 쉽지 않다. IIHS는 또한 2009년부터 SUV가 전복되는 상황을 가정해 지붕의 강도를 측정하는 테스트도 실시하고 있다. 올해는 사고 방지를 위해 헤드라이트 테스트 항목을 신설했다.
유로 NCAP은 영국 운수성 산하 교통연구소(Transport Research Laboratory)에서 처음 도입했다. 본부는 벨기에의 브뤼셀에 있다. 별 5개를 만점으로 하며 성인, 어린이, 보행자, 안전보조장치 등 4개 부문을 평가한다. 성인 안전성은 다른 NCAP과 마찬가지로 충돌 안전성으로 평가한다. 이는 50km/h 속도의 고정벽 정면충돌, 64km/h의 속도로 전면의 40%를 충돌시키는 오프셋 충돌시험으로 구성된다.
정면충돌은 승객의 하체와 머리, 가슴부위의 손상을 중점적으로 살핀다. 운전석과 동반석 뒷자리에는 성인 여성 크기의 인체모형인 더미(dummy)를 앉히는데, 이는 여성 및 노인의 안전까지 살펴보기 위해서다. 40% 오프셋 테스트는 어느 정도 충격을 흡수하는 벽에 차를 충돌을 시킨다. 50km/h의 속도로 마주오는 차와 부딪치는 상황을 가정한 것이다. 탑승자 공간이 얼마나 안전한지, 에어백 등의 안전장치가 충격을 얼마나 잘 흡수하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핀다. B필러에 50km/h로 물체를 충돌시키는 ‘측면충돌 테스트’, 32km/h로 지름 254mm의 기둥에 충돌시키는 ‘측면 기둥충돌 테스트’도 포함된다.
어린이 안전도 시험은 카시트 장착의 용이성, 충돌 안전성 등을 평가한다. 보행자 안전은 보행자의 머리, 다리의 손상 정도를 평가하며, 긴급제동장비도 체크한다. 안전보조장치 항목은 전면 비상 브레이크나 차로이탈 방지장치 등 능동적 안전장비가 많을수록 높은 점수를 준다.
호주의 신차 안전도 평가 프로그램(ANCAP)은 1993년 도입됐다.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팔리는 차를 대상으로 하며 역시 별 5개를 만점으로 한다. 평가항목은 유로 NCAP과 비슷하고, 성인과 어린이의 안전도를 따로 공개한다.
정면충돌 테스트는 64km/h 속도에서 전면의 40%를 충돌시킨다. 측면충돌 테스트는 950kg의 물체를 50km/h의 속도로 차 옆부분에 충돌시킨다. 전봇대 등에 부딪히는 사고가 많은 것을 감안해 29km/h의 속도로 더미의 머리를 딱딱한 봉에 충돌시키는 ‘측면 기둥충돌 테스트’도 실시한다. 그밖에 보행자 안전 테스트와 척추 부상 테스트도 있다.
일본의 JNCAP은 1995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55km/h의 속도의 고정벽 정면충돌 테스트를 기본으로, 2009년 유로 NCAP과 같이 전면의 40%만 충돌시키는 오프셋 충돌 테스트가 더해졌다. JNCAP의 정면충돌 테스트에는 키 175cm, 몸무게 78kg의 성인 남자의 더미가 쓰인다.
측면충돌 안전성 평가는 55km/h의 속도로 물체를 충돌시킨다. 2009년에는 척추 부상에 대한 안전성 평가가 더해졌다. 보행자 안전성 평가는 머리 손상 정도를 살피고 유아용 시트, 마른 노면과 젖은 노면에서의 제동성능 평가도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자동차 안전도를 평가하는 프로그램이 존재한다. 이 프로그램은 교통안전공단 소속 자동차안전연구원에서 실시하며 1999년부터 2014년까지 승용자동차 121개 모델, 승합자동차 4개 모델, 소형화물차 2개 모델에 테스트를 실시해 종합평가를 발표했다. 정면충돌 안전성, 부분정면충돌 안전성, 측면충돌 안전성, 기둥측면충돌 안전성, 좌석 안전성, 보행자 안전성, 주행전복 안전성, 제동 안전성 그리고 사고예방 안전성 등 9가지 항목을 평가하며 2013년엔 첨단안전장치 항목이 추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