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익, 미국 최대 자동차 메이커 GM의 뿌리
2016-09-10 08:30:00 글 박영준 (자동차 칼럼니스트, 단국대 법학과 교수)
1973년형 뷰익 센츄리 리갈 쿠페
요즘에는 의미가 많이 퇴색했지만 미국 자동차시장은 오랫동안 빅3이라고 불리는 GM·포드·크라이슬러가 지배했다. 포드는 포드자동차가 시작이고 크라이슬러는 크라이슬러자동차에 기반을 둔다. 가장 큰 메이커인 GM의 출발점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한국GM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쉐보레이니 쉐보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GM의 기초가 된 메이커는 뷰익(Buick)이다.
스코틀랜드 출신 이민자 데이비드 뷰익은 1899년 내연기관 엔진을 제조하는 ‘뷰익 오토빔 앤드 파워 컴퍼니’(Buick Auto-Vim and Power Company)를 설립했다. 엔지니어 월터 마의 설계로 엔진을 제작해 1899년과 1900년에 자동차를 만들었다. 뷰익이 선박용 엔진 제작에 관심을 쏟자 월터 마는 회사를 떠났다.
뷰익은 OHV 엔진을 처음 개발했다
후임 엔지니어로 입사한 유진 리처드는 연소 효율을 높이기 위해 밸브를 엔진의 헤드 위쪽에 놓은 OHV 방식을 개발하고 1902년 특허를 얻었다. 1903년 회사는 이름을 ‘뷰익자동차회사’(Buick Motor Company)로 바꾸고 OHV 엔진을 얹은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뷰익 최초 양산차인 모델 B
뷰익은 금광과 석유산업에 대한 투자 실패로 재정이 나빠지자 1904년 회사를 팔았다. 새 주인은 미시간주 플린트에 있는 ‘듀런트-도트 마차회사’를 경영하던 윌리엄 듀런트였다. 듀런트가 자동차 생산에 힘을 쏟은 덕분에 1903년 연간 37대에 불과하던 판매량은 1905년 750대, 1906년 1,400대, 1907년 4,641대, 1908년 8,800대로 폭발적으로 늘었다. 뷰익자동차는 올즈모빌·포드·맥스웰 등을 누르고 미국 제1의 메이커로 올라섰다. 1906년 듀런트는 뷰익으로부터 나머지 주식을 모두 넘겨받아 2년 뒤 새로운 지주회사 GM(General Motors)을 출범시켰다.
뷰익의 레이서로 활동한 루이스 쉐보레는 윌리엄 듀란트의 친구다
뷰익자동차는 1908년부터 자동차 경주에도 참여하기 시작했다. 드라이버는 윌리엄 듀런트의 절친한 친구인 루이 쉐보레였다. 레이서를 그만둔 쉐보레는 1911년 듀런트와 공동으로 쉐보레자동차를 설립했다. 쉐보레가 고성능 스포츠카 콜벳과 카마로를 거느리게 된 배경이다.
자동차 역사상 최초 컨셉트카였던 뷰익 Y Job
GM 설립 후 듀런트는 여러 자동차회사를 인수합병해 미국 최대 자동차 그룹으로 키워냈다. 산하 브랜드들은 각기 다른 소비자를 목표로 독립적으로 운영됐다. 뷰익은 최고급 브랜드인 캐딜락 아래에 자리잡은 고급차였다. 뷰익은 지금까지 미국 자동차를 대표하는 고급차들을 꾸준히 공급해왔다. 2010년형 뷰익 라크로스는 같은 해에 GM대우가 알페온이라는 이름으로 양산했다.
현대자동차가 고급 브랜드로 제네시스를 운용하기 시작했으니 한국GM도 대중 브랜드로 쉐보레를, 고급 브랜드로 뷰익을 사용하면 어떨까?
1899 뷰익 오토빔 앤드 파워 컴퍼니 설립 내연기관 엔진과 자동차 제작
1902 오버헤드 밸브 엔진 개발. 특허 획득
1903 뷰익자동차회사로 사명 변경
1904 윌리엄 듀런트에게 매각
1908 연 8,800대 생산으로 미국 제1의 메이커로 발돋움
1911 쉐보레와 듀런트가 공동으로 쉐보레자동차 설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