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같이 희뿌옇고 탁한 공기 때문에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요즘이다. 3, 4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에서 유입되는 황사나 미세먼지 탓이라고 생각했지만, 꼭 그 이유만이 아니기에 더욱 씁쓸하다. 석탄으로 가동되는 화력발전소를 비롯해 요즘 인기 높은 디젤차도 대기오염의 원인 제공자로 지목된다.
10년 전만 해도 국내 도로에서 디젤 승용차를 기가 쉽지 않았다. 1979년 디젤 승용차가 허용되며 새한 로얄 디젤, 기아 콩코드 디젤 등이 등장했지만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와 맞물려 배기가스 규제가 강화되면서 단종됐기 때문이다.
이후 2005년 디젤 승용차 판매가 다시 허용됐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교토 의정서가 발효된데다가 디젤차 수입 금지는 EU 회원국과의 통상마찰 원인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커지는 디젤차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 메이커의 디젤 기술 개발을 촉진할 필요도 있었다. 이런 배경으로 유로3 배기규정에 맞는 디젤 승용차의 판매를 허락하게 됐다.
컨퍼런스 홀 한켠에 마련된 PSA 디젤 엔진 계보
디젤 엔진은 가솔린 엔진에 비해 연소효율이 높아 연비가 높다. 연료인 경유 값도 상대적으로 저렴해 유지비가 적게 들고 힘도 좋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디젤 엔진을 선호한다. 장점만 있으면 좋은데 문제는 질소산화물 같은 유해물질과 흔히 매연이라 부르는 고형 탄소입자가 배출된다. 가솔린 엔진과 달리 압축된 혼합기(연료+공기)의 폭발을 통해 에너지를 얻기 때문이다.
디젤차에서 나오는 가스가 인간과 자연에 어떤 영향을 미치길래 이렇게 난리법석일까. 일상생활에서 나오는 먼지는 호흡과정에서 코털이나 기관지 섬모 등에 의해 걸러지지만 자동차에서 배출되는 미세먼지는 입자가 작아 폐는 물론이고 혈관에까지 침투한다. 이는 호흡기·알레르기성 질환과 암을 일으키고 산성비의 원인이 된다. 이 때문에 배기가스에 대한 규제가 갈수록 강화됐다. 메이커들은 이 규정을 만족시켜야만 차를 팔 수 있기에 배출가스 줄이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유로6와 대등한 기준으로 규제 완화해
지난 7월 12일 일본 도쿄에서는 PSA그룹의 블루HDi 디젤 테크놀러지 컨퍼런스가 열렸다. 요란한 행사명이 붙었지만 사실은 PSA가 일본에서 처음으로 디젤차를 출시하는 행사였다. PSA그룹은 지난해 10월 도쿄모터쇼에서 푸조 508 GT를 앞세워 디젤 승용차의 일본 입성을 선언했다. 1950년대 일본에 진출했지만 디젤 승용차를 들여놓을 수 없었다. 일본은 배기규정이 무척 까다롭고 ‘디젤차=더러운 차’라는 생각에 눈살부터 찌푸리는 성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1989년 디젤 승용차에 대한 증세를 골자로 한 자동차세 개정과 도쿄의 ‘디젤 자동차 NO’ 캠페인을 벌여 지금까지도 디젤 승용차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2009년 10월에는 포스트 신장기 규제를 통해 배출가스 기준을 더욱 강화했다. 2009년 당시 일본의 NOx(질소산화물) 허용치는 0.08g/km이었지만 유로5 규정치는 0.18g/km이었다(우리나라는 유럽 기준을 따른다). 이 때문에 토요타를 비롯한 일본 자동차회사들은 하이브리드 자동차 개발에 매진했고 하이브리드 강국으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2014년 유로6 배기규정을 받아들이면서 유럽차도 일본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다. 일본과 유로6의 NOx 허용치가 0.08g/km로 같아졌다. 초미세먼지는 일본 0.005g/km, 유로6는 0.0045g/km로 비슷하다.
소형 디젤에도 SCR 장치 도입한 PSA그룹
PSA그룹은 그동안 힘과 연비가 좋은 디젤 엔진의 강점을 유지하면서 배출가스를 줄이는 연구를 해왔다. 2013년부터는 NOx의 저감에 가장 효과적인 SCR(Selective Catalytic Reduction, 선택적 환원촉매) 시스템을 모든 디젤차에 사용한다. 암모니아가 포함된 요소수를 분사하는 SCR 시스템을 쓰면 질소산화물을 최대 90%까지 줄일 수 있다.
PSA의 디젤차는 NOx 저감에 가장 효과적인 SCR(선택적 환원촉매), 산화촉매와 DPF(디젤분진 미립자 필터)를 함께 사용한다
SCR 관련 부품을 집어 넣으려면 차에 여유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무게가 늘어난다. 암모니아 성분 요소수가 영하 10도 이하에서 얼 수 있어 별도의 보온장비를 갖춰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비용이 올라간다. 배기량이 작은 소형차에는 잘 사용하지 않지만 PSA그룹은 1.6L와 2.0L의 두가지 엔진개발에만 집중해 생산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고 한다.
PSA그룹의 블루HDi 엔진에는 SCR 외에도 산화촉매와 DPF(Diesel Particulate Filter, 디젤분진 미립자 필터)도 들어간다. 산화촉매로 HC(미연소 탄화수소)와 CO(일산화탄소)를 제거 한 다음 SCR 단계에서 질소와 물로 변환시키고 DPF를 통해 미립자 먼지를 99.9% 제거한다. 특히 디젤 분진 미립자 필터 상단(엔진측)에 SCR을 배치해 시동 직후 저온에서부터 신속하게 NOx의 제거가 가능하다. 이상적인 연소와 배기가스 처리방식을 통해 유로6에 대응하는 클린 디젤 엔진을 완성했다. 이 시스템은 전세계에 퍼져 있는 1,200만여대 PSA그룹 자동차에 달렸다.
1938년 푸조가 내놓은 디젤 승용차 402.1936년 벤츠 260D에 이은 역사상 두번째 디젤 승용차다
PSA그룹의 디젤 역사는 길다. 메르세데스-벤츠에 이어 두번째로 오래된 자동차 메이커인 푸조는 디젤 승용차 부문에서도 두각을 드러냈다. 벤츠가 최초의 디젤 승용차인 260D를 출시한 뒤 2년 후인 1938년 푸조는 역사상 두번째 디젤 승용차인 402를 선보였다). 2차 세계대전 발발로 인해 디젤 승용차 생산은 잠시 중단됐다가 1959년 푸조 403이 계보를 이었다. 403 디젤은 영업용 택시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1990년에는 3개의 밸브와 실린더를 사용한 최초의 멀티 밸브 디젤 엔진은 얹은 푸조 605와 시트로엥 XM이 선보였다. 1998년에는 커먼레일 방식 고압 분사식 엔진(HDi)을 내놓았다. 2000년에는 세계최초로 디젤 미립자 필터(DPF)를 개발하고, 2012년에는 최초의 디젤 하이브리드 기술인 HY4 구동계를 공개했다. 1995년 전기차인 푸조 106과 시트로엥 삭소를 내놓은 PSA이기에 디젤 엔진과 전기모터를 조합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을지도 모른다.
푸조의 디젤 하이브리드 기술인 HY4 구동계
파워트레인&섀시 엔지니어링 파트의 크리스챤 샤펠 연구개발부장은 컨퍼런스를 통해 PSA 그룹은 “이미 1990년대부터 배기가스 저감을 위해 노력했다. 2000년 개발한 미립자 필터와 2013년부터 차종 전체에 확대 적용 중인 BlueHDi 테크놀로지는 현재 자동차 시장에서 가장 효과적인 디젤 엔진의 배기가스 저감 해결책이다. 그 효과를 점차 인정 받는다”고 말했다.
PSA그룹의 파워트레인&섀시 엔지니어링 파트의 크리스챤 샤펠(좌) 연구개발부장은 PSA그룹 디젤의 우수성을 강조했다
지난해 유럽에서 판매된 자동차의 절반 정도가 디젤차였다.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사건 이후 조금 줄어들었는데도 이 정도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올해 1~3분기 수입 디젤차 판매량은 10만1,520대로 전체 등록대수의 61.5%를 차지했다. 디젤 게이트 영향으로 이전보다 줄었지만 아직까지는 비중이 크다.
PSA그룹이 디젤 승용차 진출을 본격화한 일본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디젤차가 보급되어 장점을 직접 경험하면 디젤에 대한 인식이 바뀔지도 모른다. 푸조·시트로엥·DS 디젤 모델이 얼마나 일본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 놓을지 궁금해진다.
“아직은 디젤차가 효율적입니다” (훗카이도대학교 공학대학원 오가와 히데유키 교수)
Q 60대 이상 일본인들은 검은 연기를 내뿜는 디젤이 도쿄의 공기를 더럽히는 주범이라고 생각합니다. 1998년 도쿄도지사가 디젤차 배기규정을 강화하면서 그런 인식이 더 심해졌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당시에는 디젤차에 대한 규제가 엄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량의 매연을 내뿜는 디젤차가 많았고 사람들은 당연히 싫어했습니다. 배출가스 규제가 강화되면서 기술도 좋아졌습니다. 현재는 매연을 뿜는 차를 보기 힘들어졌고 도시의 공기도 맑아졌습니다. 일례로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데 디젤차가 정차하면 사람들은 매연으로 인해 고통스러워 했죠. 지금은 이런 일도 없고 ‘디젤=시커먼 매연’이라는 인식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Q 1998년 디젤 엔진 비율은 어느 정도였나요?
A 10%도 되지 않았습니다. 미니밴과 SUV 등 무거운 대형차가 주로 디젤 엔진을 사용했죠. 2000년대 들어 디젤차 규제를 강화하는 바람에 그나마 있었던 디젤차에 대한 수요도 거의 없어졌습니다. 사려는 사람이 있어도 차를 구하기 어려운 실정이었죠.
Q 현재 디젤차 점유율이 높아지고 있나요?
A 2008년 일본에서 디젤차 판매가 허용됐고 이때 몇가지 차종이 나왔어요. 2009년 친환경차에 대한 세제 혜택이 생긴 이후 디젤차가 늘어나기 시작했고요.
Q 일본에서 디젤차를 사려고 해도 차종이 별로 없습니다.
A 네, 선택할 수 있는 모델이 제한적인 상황입니다.
Q 왜 일본에는 디젤차가 적은 걸까요?
A 알다시피 일본 메이커들은 하이브리드카에 집중합니다. 디젤 엔진을 새로 개발하고 배출가스 저감기술에 투자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하이브리드카 개발비가 적다는 것이 아닙니다. 친환경차 제작에서 일본은 하이브리드 방식을, 유럽 메이커들은 디젤 엔진을 선택했습니다.
Q 유럽 메이커들이 디젤차를 선택한 이유는 장점이 많기 때문이겠죠? 왜 디젤차가 좋고 이 시기에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A 첫째 연소효율이 좋습니다. 연소효율이 좋다는 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다는 뜻이고, 이는 환경친화적이라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둘째, 원유를 수입해 정제하면 휘발유 외에 등유와 경유 등이 나옵니다. 휘발유는 다양한 화학처리와 그 과정에서 생성되는 이산화탄소를 제거해야만 연료로 쓸 수 있어요. 경유도 약간의 화학처리가 필요하지만 휘발유에 비하면 그대로 쓰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연료화 과정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도 굉장히 적어요. 셋째, 에너지의 다양화에서 있어서도 디젤이 필요합니다. 현재 순수 전기차나 하이브리드카 같은 친환경차가 나오지만 액체 에너지가 효율이 제일 높아 자동차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배터리의 경우 화석 연료보다 100배 정도 무겁고 열량당 체적도 100배나 커서 공간을 많이 차지해요. 자동차의 에너지 효율면에서 불리합니다. 전기차나 FCV(연료전지차)도 무공해차의 한 축이 될 것이기 때문에 기대가 크지만, 앞으로 수십년은 여전히 액체 에너지(가솔린, 디젤)를 쓰는 차가 주류를 이룰 것입니다.
Q 경유가 가솔린보다 좋은 점은 무엇인가요?
A 경유가 더 안전하다는 점입니다. 가솔린은 휴대가 어렵지만 경유는 플라스틱통에 담아서 운반이 가능할 정도로 안전성이 높습니다.
Q 디젤차의 연비가 정말로 뛰어난가요? 디젤차 연비가 좋은 이유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A 경유는 가솔린과 달리 고압축이 가능합니다. 압축연료가 폭발하며 힘을 내는데, 경유는 압축력과 팽창력이 높아서 열효율이 좋습니다. 가솔린은 휘발성이 있어 압축비가 높아지면 이상연소 현상이 발생해 효율이 떨어집니다. 또한 폭발적인 힘을 위해 출력을 방해하면서 쥐어짜는 것 같은 답답함이 있어요. 입을 막고 있어 숨쉬기가 어려운 현상에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경유는 이런 현상이 없어 시원하게 힘을 낼 수 있습니다.
Q 디젤은 연비가 좋아서 장거리 주행에 유리하다고 들었습니다. 도시에서는 어떤가요?
A 도시에서도 좋은 연비를 유지합니다. 가솔린 엔진은 초기 가속이 답답하지만 디젤은 빠른 가속이 가능하고 연비도 좋습니다.
Q SCR의 단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A SCR은 요소수를 주기적으로 채워야 하고 요소수탱크 때문에 적재공간이 줄어듭니다. PSA그룹은 요소수 탱크를 줄이고 위치도 트렁크 밑으로 옮겨 스페어 타이어 공간을 확보했어요. 요소수를 리필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극복했습니다. 요소수도 쉽게 구입할 수 있는데 메인티넌스 프로그램을 통해 3년간 무료로 보충해준다고 합니다. 요소수가 부족하면 모니터가 적절한 보충시기를 알려줍니다.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아도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