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웰, 크라이슬러의 모태
2016-11-08 08:00:00 글 박영준 (자동차 칼럼니스트, 단국대 법과대학 교수)
Maxwell 30cwt Charabanc (1922)
맥스웰(Maxwell)은 크라이슬러의 모태가 된 자동차회사다. 20세기 초반 막 태동한 GM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U.S.모터스의 핵심 브랜드다.
올즈모빌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던 조너선 맥스웰(Jonathan Dixon Maxwell, 1864~1928)은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판금 가공회사로 큰 돈을 번 벤저민 브리스코(Benjamin Briscoe, 1867~1945)와 함께 1904년 미국 뉴욕주 태리타운에서 맥스웰-브리스코(Maxwell-Briscoe Company)를 설립했다.
회사 설립과 동시에 2기통 엔진을 장착한 맥스웰 러너바웃을 발표했는데 미국에선 처음으로 강철 차체를 사용했고, 샤프트드라이브 방식을 채택했다. 첨단 차체와 구동방식을 쓰고도 가격이 다른 차들의 절반 수준인 500달러밖에 안돼 큰 인기를 얻었다. 첫해 판매대수는 532대였다. 맥스웰자동차는 쑥쑥 성장해 1908년에는 포드·뷰익·올즈모빌과 함께 미국 4대 자동차 메이커로 올라섰다.
당시 미국에는 수십개의 자동차회사가 난립했다. 1908년 브리스코는 성공적인 4개 회사가 뭉쳐서 규모를 키우면 자동차시장을 독점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포드의 헨리 포드, 뷰익의 윌리엄 듀런트, 올즈모빌의 랜섬 올즈를 설득했지만 실패했다. 오히려 뷰익의 듀런트가 올즈모빌을 합병해 GM을 설립하는 계기만 만들어주었다.
이에 브리스코는 맥스웰-브리스코를 중심으로 스토다드-데이턴, 쿠리에, 컬럼비아, 브러시, 앨던 샘슨, 게리 마린, 프로비던스, 토머스 등 11개 브랜드의 공동판매회사인 U.S.모터스를 설립해 GM에 대항했다.
여러 회사가 독립적으로 차를 생산해 U.S.모터스의 딜러망을 통해 미국 전역에 판매하는 시스템이었다. 대량유통의 결과로 1911년에는 전해에 비해 매출이 57%나 증가하는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했다. 하지만 판매량의 절반 가까이가 맥스웰차였고, 이익이 나는 것도 맥스웰뿐이었다. 전국적인 딜러망 구축에 많은 돈을 들인 탓에 U.S.모터스는 적자에 허덕였다. U.S.모터스는 2년 뒤인 1912년 파산하고 소속 자동차회사들의 자산은 매각됐다.
Maxwell 23hp Tourer (1923)
1913년 U.S.모터스의 자산을 낙찰받은 월터 플랜더스(Walter Emmett Flanders, 1871~1923)는 회사명을 맥스웰자동차(Maxwell Motor Company, Inc.)로 바꾸고 본사를 디트로이트로 이전했다. 맥스웰은 6개 공장에서 2기통 모델을 생산해 저렴한 가격에 팔았다. 당시 잘 팔리던 올즈모빌 러너바웃이 650달러, 포드 모델 N이 700달러였는데, 맥스웰 러너바웃은 250달러밖에 하지 않았다. 1914년 맥스웰은 6만대를 판매해 GM·포드와 함께 빅3에 들었다.
1910년대를 성공적으로 보냈으나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20년 자금난에 봉착했고, 이듬해 채권단에 의한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새 경영자로 GM의 부회장 출신인 월터 크라이슬러가 임명됐다. 크라이슬러는 모델 25 등 저렴하고 경쟁력 있는 4기통 자동차를 중점적으로 생산·판매했다.
1925년 크라이슬러는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를 설립하고 곧이어 맥스웰을 합병했다. 그가 윌리스의 법정관리인으로 재직할 때 개발한 윌리스 식스가 크라이슬러 첫모델인 크라이슬러 식스로 생산됐고, 이듬해 맥스웰 모델 25도 크라이슬러로 배지를 바꿔 달았다. 맥스웰의 인디애나주 뉴캐슬 공장 역시 크라이슬러로 바뀌어 2004년까지 가동됐다.
1864 조너선 맥스웰 출생
1904 맥스웰-브리스코 설립, 맥스웰 러너바웃 발표
1908 미국 4대 자동차회사로 성장
1910 U.S.모터스 설립
1912 U.S.모터스 파산
1913 맥스웰자동차 설립
1921 월터 크라이슬러가 경영을 맡음
1925 크라이슬러 설립 및 맥스웰 합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