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센버그, 최고가에 팔리는 아메리칸 클래식카
2016-12-05 11:30:00 글 박영준 (자동차 칼럼니스트, 단국대 법과대학 교수)
대공황 시절, 유명인들에게 큰 인기를 얻은 모델 J
요즘 사람들에게 럭셔리카 브랜드를 묻는다면 열에 아홉은 영국이나 독일 브랜드 이름을 댈 것이다. 캐딜락, 링컨 같은 미국 브랜드도 있지만 유럽 고급차에 못미치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클래식카 시장에서 롤스로이스나 벤츠보다 더 비싸게 팔리는 미국차가 있다. 바로 ‘듀센버그’(Duesenberg)다.
독일에서 미국 아이오와로 이민간 듀센버그 형제는 독학으로 자전거 기술을 배워 20대 초반인 1890년대에 직접 자전거를 제작, 각종 대회에서 우승을 휩쓸었다. 그들은 유럽에서 가솔린 자동차가 빠르게 보급되는 것을 보고 효율이 뛰어난 가솔린 엔진을 제작해 1899년 특허를 받았다.
듀센버그 형제는 재력가 에드워드 메이슨 변호사를 끌어들여 1905년 메이슨(Mason)자동차를 설립했다. 메이슨차가 힐클라임 경기에서 연승을 거두면서 명성이 높아지자 듀센버그 형제는 자신들의 지분과 엔진 특허를 로체스터(Rochester)자동차에 매각하고 1913년 고향인 아이오와로 돌아가 듀센버그자동차를 설립했다.
듀센버그자동차 최초의 차, 모델 A
경주용 엔진과 경주차 제작에 주력하던 듀센버그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듬해인 1920년 뉴욕 모터쇼에 첫 양산차인 모델 A를 선보인다. 이 차는 직렬 8기통 4,260cc OHC 100마력 엔진, 4륜 유압 브레이크 등 첨단기술을 사용했다. 모델 A의 판매가는 6,500달러로, 다른 고급차들보다 1,000달러나 비쌌다.
듀센버그 형제는 사업수완이 좋지 못해서 경영에 어려움을 겪다가 1922년 파산했다. 하지만 모델 A는 1926년까지 600여대가 굴러나왔고, 같은해 혜성같이 나타난 사업가 에레트 코드(Errett Lobban Cord)에게 매각됐다.
형인 프레드릭은 부사장에 임명되어 신차 개발을 책임졌고 1928년 뉴욕 모터쇼에서 모델 J를 발표했다. 모델 J는 직렬 8기통 6,882cc DOHC 4밸브 엔진을 얹어 265마력을 냈다. 그 무렵 DOHC는 경주차에나 쓰던 첨단기술이었다. 최고속도 186km/h에 달하는 빠르고 고급스러운 모델 J는 코드의 사업수완에 덕분에 2만달러의 비싼 가격표를 달고도 잘 팔렸다(포드 모델 T는 300달러였다).
1929년 시작된 대공황으로 고급차 제조사들은 경영난을 겪었지만 듀센버그의 성장세는 꺾이지 않았다. 왕족·부호·영화배우 등이 듀센버그 모델 J로 자신들의 재력과 명예, 인기를 과시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델 J보다 더 고급스럽고 빠른 차를 원했다. 1932년 모델 J에 수퍼차저를 더한 모델 SJ가 나왔다(앞의 S는 수퍼차저를 의미). 최고출력 320마력, 최고속도 205km/h를 자랑하는 최고성능 차였다.
듀센버그자동차에서 만든 마지막 차, 모델 SSJ
모델 SJ가 데뷔하고 얼마 후 프레드릭은 컨버터블 모델을 시운전하던 중 사고를 내고 그 후유증으로 세상을 떴다. 그의 나이 56세 때였다. 형의 뒤를 이어 부사장이 된 어거스트는 1937년 모델 SJ의 숏휠베이스 버전인 모델 SSJ를 만든다(맨앞의 S는 short의 의미). 이 차는 명배우 게리 쿠퍼를 위해 제작했는데, 모델 SJ를 갖고 있던 클라크 게이블이 한대를 주문해 2대가 만들어졌다.
듀센버그는 1937년 지나친 사업확장으로 모기업인 코드그룹이 도산하자 함께 문을 닫았다. 이후 어거스트는 재기하려고 애썼으나 제2차 세계대전 등이 겹쳐 실패했다. 어거스트는 1955년 76세로 생을 마쳤다.
듀센버그의 총생산대수는 모델 A 600여대, 모델 J·SJ·SSJ 480여대 등 모두 1,100대 정도다. 현재 미시간주 오번에 있는 옛 자동차 공장을 개조한 ACD자동차박물관에 그 유산을 전시하고 있다.
1899 가솔린 엔진 특허 획득
1905 메이슨자동차 설립
1913 듀센버그자동차 설립
1920 첫차 모델 A 출시
1926 사업가 에레트 코드에게 매각됨
1928 모델 J 출시
1932 모델 SJ 출시
1937 모델 SSJ 출시, 도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