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이슬러의 보급형 브랜드, 플리머스
2017-01-26 11:03:51 글 박영준(자동차 칼럼니스트, 단국대 법과대학 교수)
프라울러
미국 빅3(GM, 포드, 크라이슬러)는 한때 많은 브랜드를 거느렸다. 이는 독립된 여러 회사로 이뤄진 GM의 영향이 컸다. GM은 각 브랜드를 가격대에 맞춰 운용했다. 저렴한 차는 쉐보레(Chevrolet), 중간급 올즈모빌(Oldsmobile), 고급차 뷰익(Buick), 최고급차는 캐딜락(Cadillac)으로 판매했다.
GM의 이런 브랜드 전략이 성공을 거두자 단일 회사로 성장한 포드도 따라했다. 보급형은 포드(Ford), 중간급은 머큐리(Mercury), 최고급차는 링컨(Lincoln) 브랜드를 사용한 것이다.
월터 크라이슬러
플리머스(Plymouth)는 크라이슬러의 보급형 브랜드였다. 1925년 월터 크라이슬러(Walter P. Chrysler)는 자신의 이름을 딴 자동차회사를 설립하고, 법정관리 경영자로 있던 맥스웰(Maxwell) 자동차를 합병했다. 그리고는 맥스웰 모델 25의 배지를 바꿔 크라이슬러 모델 52로 판매했다.
성공적인 판매에 자신감을 얻은 크라이슬러는 GM처럼 브랜드를 운용하기로 했다. 크라이슬러를 고급차 브랜드로 사용하고, 보급형 모델에는 플리머스 상표를 붙였다. 플리머스는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간 영국의 청교도들이 처음 도착한 지역 이름이다. 강력한 아메리카니즘을 반영한 작명인 셈이다. 플리머스의 첫차는 1928년 등장한 모델 U다. 이것 역시 크라이슬러 모델 52의 이름을 바꾼 것이다.
1928년 모델 U
1929년 10월 주가 폭락으로 시작된 경제 대공황으로 저렴한 자동차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플리머스의 판매도 늘어났다. 그 결과 1931년에는 포드와 쉐보레에 이어 미국 3위 브랜드로 올라섰다. 4기통 모델만 판매하던 플리머스는 1933년 6기통 엔진을 얹은 모델 PC를 내놓았다. 이 차는 저렴한 가격에 만족스러운 성능을 지녀 큰 인기를 모았다. 플리머스는 1940년과 1941년에는 쉐보레에 이어 판매 2위를 했다.
1955년 8기통 엔진을 쓰기 시작했고 이듬해 대형차 퓨리 등에 얹어 선보였다. 1957년 크라이슬러의 디자인을 총괄하던 버질 엑스너(Virgil Exner)는 미래적인 자동차 디자인을 선보였다. 그러나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화려한 외관과 달리 내장재는 형편없었고 잔고장도 빈번했다. 이로 인해 플리머스는 ‘고장이 잘나는 질 낮은 차’라는 혹평을 듣게 됐다.
1968년형 발리안트
품질 문제로 판매가 급감하자 크라이슬러는 1960년 데뷔한 플리머스 발리안트(Valiant)를 이듬해부터 이미지가 좋은 닷지(Dodge) 브랜드로도 판매하기 시작했다. 닷지는 크라이슬러에서 대형 트럭과 상용차를 담당하던 브랜드였는데, 일종의 구원투수로 등장한 셈이다. 이때부터 플리머스와 닷지는 같은 모델에 다른 배지를 달기 시작했다. 평이 좋지 않았던 플리머스는 점차 판매량이 떨어지고 브랜드의 독자성도 잃게 됐다.
1980년이 되자 플리머스는 독자생존이 어려워졌다. 크라이슬러의 대중 브랜드는 닷지로 인식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998년 크라이슬러는 플리머스를 살리기 위해 핫로드 스타일의 프라울러(Prowler)를 발표했지만 일부 마니아의 호평을 이끌어냈을 뿐 대중의 관심을 되돌리진 못했다.
2001년 크라이슬러는 플리머스 브랜드를 쓰지 않기로 결정함으로써 미국인에게 친숙했던 대중차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