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SU, 아우디에 합류한 다섯 번째 구성원
2017-02-08 10:45:34 글 박영준 (자동차 칼럼니스트, 단국대 법과대학 교수)
아우디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아우토우니온(Auto Union)은 1932년 네개의 회사가 합쳐져 출범했다. 아우토우니온이 아우디로 발전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1969년 NSU와 합병해 ‘아우디NSU아우토우니온’이 됐고, 지금의 아우디(Audi AG)는 1985년에 탄생했다. 따라서 4개의 원을 심벌로 삼고 있지만 실제로는 5개 메이커의 연합체인 것이다.
1873년 독일 다뉴브 강변의 라이들링겐에서 직물 편직기계회사로 출발한 NSU는 20세기 들어 모터사이클로 영역을 넓혔고, 1905년부터 자동차도 만들었다. 초기에는 벨기에 자동차를 라이선스 생산했고, 이후 6/10, 6/18, 6/30 등을 발표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 후 경제불황의 여파로 경영이 악화되면서 1929년 자동차 생산을 중단하게 된다. 1932년에는 생산시설을 이탈리아 피아트에 매각했다.
프린츠
자동차 사업은 된서리를 맞았지만 모터사이클 생산은 꾸준히 이어졌다. 1930년대에는 작센주에 기반을 둔 데카베(DKW)와 세계 최대 모터사이클 메이커의 자리를 놓고 경쟁할 정도로 성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격화되면서 NSU는 군용 모터사이클과 전쟁 용품을 생산한다. 전쟁 후 폐허가 된 공장에서 모터사이클 생산을 재개해 1955년 세계 최대 모터사이클 메이커의 지위를 되찾을 수 있었다.
모터사이클의 성공으로 경영이 회복되자 NSU는 다시 자동차에 도전했다. 1958년 첫 모델 프린츠(Prinz, 1957~62)를 발표했다. 자사의 인기 모터사이클 막스(Max)의 공랭식 엔진 2개를 붙인 2기통 583cc 20마력 엔진을 뒤쪽에 얹은 소형세단이었다.
로터리 엔진
1964년에는 자동차 역사에 길이 남을 신기술을 발표한다. 펠릭스 반켈(Felix Wankel)이 고안한 로터리 엔진이 그것이다. 로터리 엔진은 사이즈가 작고 밸브기구가 따로 없어 가벼우며 동력 손실이 적다. 이 엔진은 스파이더(Spider, 1964~67)에 실려 첫선을 보였다.
1967년 로터 2개를 사용한 995cc 113마력의 Ro 80(1967~77)이 나왔다. 이 차는 작은 배기량에 연소효율이 좋아 호평을 받았고, ‘1968년 유럽 올해의 차’에 뽑히기도 했다. 그러나 2만km 주행 후 엔진을 손봐야 하고, 시끄럽고 관리하기 불편한 차라는 악평과 함께 판매가 급감했다.
NSU TT
NSU는 로터리 엔진 개발에 돈을 너무 많이 쓴 탓에 경영난에 빠졌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1968년 건재하던 모터사이클 부문을 매각했다. 하지만 다시 일어서지 못하고 이듬해 폭스바겐그룹에 합병되고 말았다.
폭스바겐은 NSU와 아우토우니온을 합쳐 아우디NSU아우토우니온(Audi NSU Auto-Union AG)으로 재편하고 라인업을 정리했다. NSU는 1977년 Ro 80의 생산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참고로 NSU의 로터리 엔진 생산권은 일본 마쯔다로 넘어간 후 스포츠카 RX 시리즈에 사용되어 커다란 성공을 거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