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는 지난해 말 ‘디젤 자동차의 미래’를 주제로 KAIDA 오토모티브 포럼을 개최했다. 업계, 학계, 언론매체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문가들과 함께 디젤 자동차 현황을 짚어보고 디젤 자동차의 미래와 향후 발전방향을 살펴보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KAIDA 윤대성 전무는 “자동차산업의 발전과정을 조명하는 포럼을 순차적으로 개최함으로써 업계 및 소비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기술적 측면에서 바람직한 방향을 짚어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겠다”라고 밝혔지만 첫번째 순서가 디젤인데서 요즘 업계의 속내와 고민을 알 수 있다.
행사는 모더레이터를 맡은 연세대학교 기계공학부 전광민 교수의 디젤 엔진기술 및 발표자 소개 후 국내외 업계, 학계 전문가들의 발표, 패널 토론, 질의응답 순서로 진행됐다.
‘디젤의 전망’이란 주제로 첫번째 발표에 나선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배충식 교수는
“디젤 엔진은 수송분야에서 현존하는 가장 효율적인 에너지 기술이며 고효율, 저배기를 실현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유망한 친환경 기술”이라고 말했다. 그는 디젤 기술의 역사와 원리부터 차근차근 설명하면서 행사 주최측이 원하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했다.
인구증가와 경제성장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에너지 기술 전망 보고서’를 통해 2050년에도 여전히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하는 내연기관이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르면 가솔린과 디젤이 각각 33%로 전체의 66%를 차지한다. 최근의 디젤 관련 변수에도 불구하고 기술 발전과 경제성, 에너지 안보, 환경성 등을 고려할 때 이 비율은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정부의 수퍼트럭 프로그램은 디젤 엔진으로 50%의 열효율을 달성했다
디젤 엔진은 다른 에너지 변환 시스템에 비해 열효율이 높아 수십년 동안 수송분야 동력원으로 사용돼왔다. 초기 디젤 엔진의 제동 열효율은 26%였지만 120여년이 지난 현재 40%를 넘어설 정도로 발전했다. 현재의 기술수준에서 평균 열효율을 비교하면 가솔린 38%, 디젤 엔진은 43% 수준이다. 효율이 좋으면 연료를 적게 태우고, 그만큼 CO2도 적게 나온다. 동일 차종에서 디젤의 연비가 가솔린보다 15~30% 높은 이유다. 문제는 연소 후 배출물질이다. 디젤의 특성상 연소 시 연료가 농후한 부분에서 입자상물질(PM)이 생성되고, 연소가 잘되면 질소산화물(NOx)이 많이 나온다.
과거 디젤 승용차는 배기 문제보다는 시끄럽고 진동이 심해 선호되지 않았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전자기술의 발전으로 엔진 제어기술이 발달하고, 커먼레일 방식으로 고압분사, 다단분사가 가능해지면서 이런저런 단점이 해소됐다. PM과 NOx도 크게 줄었다. 2000년 유로3과 2013년 유로6을 비교해보면 DPF, LNT, EGR, SCR 등 다양한 기술을 적용한 덕분에 디젤차의 PM과 NOx는 10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 앞으로 신기술이 나오면 배출가스를 더 줄일 수 있다.
신형 티구안은 높은 산을 넘고 있다. 오르지 못할 산은 아니겠지
다만 배출가스 저감기술을 적용하면 차값이 올라가고, 엔진 작동과정에서 연료 소모가 늘어날 수 있다. 이를 피하면서 경쟁력을 유지하려고 꼼수를 부리는 과정에서 소위 디젤 게이트가 터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부작용일 뿐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있고 솔루션은 무궁무진하다. 당장 도입하지 못하는 것은 경제성 때문이다. 전기차, 하이브리드카, 연료전지차 등과 달리 보조금 없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 디젤차의 현실이다.
디젤차에 호의적인 유럽 각국은 물론 미국, 일본도 열효율을 50~60%까지 끌어올리는 국책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 디젤차의 기술 개발 및 보급을 독려하고 있다. 따라서 일련의 사건들을 빌미로 ‘디젤차가 문제’라고 몰아가는 것은 본질을 흐리는 것이다. 디젤에 대한 착시현상을 빨리 벗어나야 하고, 기술로 생긴 문제는 기술로 풀어야 한다는 것이 배교수의 주장이다.
프랑스 PSA그룹의 패트리스 마레즈 파워트레인 부문 부사장은 ‘효율적이고 청정한 디젤을 위한 기술’이라는 주제 발표에서 “자동차업계는 기후문제, 자원 희박화, 도시화로 인한 대기오염, 고객 요구사항의 변화 등 여러가지 도전에 대처해야 하는 상황이며 CO2 감축은 전지구적인 목표”라고 하면서 “디젤은 강화된 CO2 배출규정을 충족하기 위한 주요 방안”이라고 말했다.
그는 2015년 푸조 208 1.6 블루HDi S&S 모델이 43L의 경유로 2,152km를 주행해 연비기록(50km/L)을 수립했다는 걸 상기시키며, 디젤차의 연비가 가솔린 대비 25% 높다고 말했다. 유럽의 각 메이커는 2020년부터 CO2 배출량을 95g/km로 낮춰야 하는데 PSA는 디젤 기술을 주축으로 이를 돌파할 계획이다.
PSA는 메르세데스-벤츠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양산 디젤 승용차(1959년 푸조 403)를 내놓았고, 1966년 최초의 알루미늄 디젤 엔진(푸조 204), 1978년 유럽 최초의 디젤 터보 승용차(푸조 604)를 출시하는 등 디젤 기술에 대한 풍부한 경험과 기술을 갖고 있다.
2000년에는 세계 최초로 DPF(디젤 미립자 필터)를, 2012년에는 첫 디젤 하이브리드카를 선보였다. 2013년부터는 블루HDi로 대변되는 SCR(선택적 촉매 환원) 시스템을 디젤 전차종에 사용해 2016년 5월 누적판매 100만대를 넘어섰다.
소형차 위주의 라인업을 가진 PSA가 가격이나 공간확보에 불리한데도 SCR을 적용한 것은 NOx 저감에 가장 효율적이고, 연비를 떨어뜨리지 않기 때문이다. 마레즈 부사장은 SCR이 향후 RDE(유럽 실도로주행 배기규정)의 NOx 규정에 대응할 수 있는 최선의 기술임을 강조했다.
다임러AG 피터 루에커트 디젤 파워트레인 부문 사장, 클라우스 란트 개발 부사장, 옌스 프란츠 책임연구원은 RDE의 역사와 현황, 이에 대한 대응기술을 발표했다.
RDE는 디젤차의 NOx 배출량이 실험실에서 유럽 NEDC 사이클로 측정한 것보다 실제 도로주행시 확연히 높다는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것으로, 모니터링을 거쳐 2017년말 최종 확정된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도로주행 시 배출되는 가스는 유로6 규제치에 CF(Conformity Factor)를 곱한 수치보다 낮아야 한다. 2019년말까지 2.1, 이후 1.5의 CF가 적용된다.
RDE는 세부 내용을 계속 논의하는 단계로, 바꾸거나 추가해야 할 부분이 많다. 다임러측 발표자들은 완벽하게 동일한 주행환경을 재현할 수 없는 RDE의 특성상, 차종끼리 RDE 결과를 비교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같은 차로 같은 코스를 반복주행해도 똑같은 수치를 얻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도로 조건, 차무게, 날씨, 운전 패턴 등이 제각각인 만큼 부하수준을 그레이드로 나눠서 표기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벤츠 E-클래스에 탑재되는 최신 디젤 엔진 OM654에 대한 소개도 있었다. E 200 d, E 220 d에 얹히는 4기통 1,950cc 터보 디젤은 무게를 줄이기 위해 실린더 간격을 기존 94mm에서 90mm로 좁히고 계단 형상의 스틸 피스톤을 적용해 연소효율을 높였다. EGR(배출 가스 재순환) 시스템을 저압과 고압으로 나누는 한편 배기경로를 따라 일렬로 늘어선 DOC(디젤 산화 촉매), DPF, SCR을 DOC와 SDPF로 통합해 엔진 옆에 붙인 것도 달라진 점이다. 이 엔진을 사용한 E-클래스의 RDE 테스트 결과치도 공개했다.
일본에서 판매 중인 디젤 승용차 중 하나인 마쯔다 데미오 XD
닛산자동차 연구개발부서에서 30년 넘게 일했고, 최근 10년간 일본자동차수입조합(JAIA)에 몸담았던 와다 마사노부는 ‘일본의 클린 디젤 발전 과정’을 주제로 일본정부의 정책 및 시장 현황을 소개했다.
일본은 2000년대 들어 디젤 승용차 비중이 1% 미만으로 떨어지는 등 멸종단계까지 갔다가 근래 판매가 되살아나 2016년 15만대, 점유율 4% 수준으로 올라섰다. 일본에선 1970년대말 석유파동 이후 디젤차가 늘어났고, 1980년대 레저용차의 인기에 힘입어 판매가 늘었다.
하지만 당시 디젤차는 가솔린차에 비해 성능이 떨어진데다 1990년대 세제 개편으로 경제적 장점마저 없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0년을 전후로 지방자치단체들이 디젤차를 대기오염의 주범으로 지목하고 퇴출 캠페인을 벌여 큰 타격을 입게 됐다. 배기규제 강화도 디젤 승용차의 자리를 좁게 만들었다.
일본에서 디젤 승용차가 살아난 것은 강력한 규제를 통과할 수 있는 클린 디젤 기술 덕분이다. 2008년 닛산이 X-트레일 디젤을 출시했고 외산차 중엔 2010년 벤츠가 처음으로 E350 블루텍을 내놓았다. 2016년 11월 기준 일본에서 판매 중인 디젤 승용차는 일본차 4개 브랜드 9종, 수입차 10개 브랜드 56종이다. 2016년 9월에는 수입차의 디젤 판매 비중이 20%를 넘어섰다.
BMW 750d는 3.0L 400마력 쿼드 터보 디젤 엔진을 탑재한다
디젤 게이트 이후에도 폭스바겐, 아우디만 판매가 급감했을 뿐 다른 브랜드와 디젤차들은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일본정부는 시판 중인 디젤차 8종을 시험한 뒤 문제가 없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디젤차를 판매하고 있지 않았던 폭스바겐 재팬은 준비했던 판매 계획을 철회했다.
한때 디젤차에 철퇴를 가했던 일본정부는 이제 클린 디젤을 장려하는 입장이다. 현재의 기술수준으로 일본의 2020년 연비규정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은 경차 외에 하이브리드카와 디젤차뿐이다. 정부는 2020년까지 차세대 자동차(NGV)의 비율을 50%까지 높이기로 했고, 하이브리드카, 전기차, 연료전지차, CNG차와 함께 클린 디젤차를 여기에 포함시켰다. 클린 디젤차의 비중을 2020년 5%, 2030년 10%까지 늘릴 계획이다. 이를 위해 보조금과 세제혜택을 주는 한편, 열효율 50% 달성, CO2 30% 저감을 목표로 관련기술 개발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디젤차에 부정적이었던 소비자들의 인식 또한 정부와 업계의 노력으로 차츰 개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