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 칼럼이 생각하는 자동차 디자인
2017-03-03 14:28:55 글 이지수 기자
2016년 12월 3일, 서울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재규어 카디자인 어워드 2016’의 결선 및 시상식이 열렸다. 그 자리엔 재규어 디자인 총괄 디렉터인 이안 칼럼이 참가했다.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인 거장이 생각하는 자동차 디자인은 무엇일까?
Q. 재규어가 LA 모터쇼에서 전기차 I-페이스 콘셉트카를 공개했었다. 당신이 생각하는 전기차의 디자인 모티브, 아이덴티티에 대해 설명해달라.
일단 전기차는 플랫폼이 매우 간단하다. 흔히 스케이트보드형 플랫폼이라고 얘기하는데, 이는 배터리를 연결하고 4개의 바퀴를 달게 되는 단순한 구성이기 때문이다. 모터가 앞뒤 바퀴 사이에 들어가기 때문에 패키징에 따라서 디자인이 결정된다.
최근 공개한 콘셉트카는 바퀴 혹은 플랫폼 위에 어떤 차를 얹을지 많은 고민 끝에 탄생했다. 스포츠카들은 대개 미드십 구성을 택해 앞쪽이 짧은데, 이 차도 미드십 구성에서 영감을 받았다. CX-75와 비슷한 모습도 보인다. 전기차의 경우 전체적인 패키징이 디젤차나 가솔린차와 다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외관 디자인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
Q.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자율주행차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먼저 자율주행차에 대해 얘기해보자. 자율성은 세 단계로 나뉜다. 첫번째는 오늘날의 형태다. 안전장비가 더해지고, 몇가지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주차를 돕는다든지, 옆차가 근접해올 때 알려주는 장비 등은 재규어도 이미 사용하고 있다.
두번째는 운전자의 개입이 있는 자율주행차다. 이는 운전자가 차를 몰다가 일을 해야 할 때 스위치를 누르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 단계까지는 인테리어에 많은 변화를 줘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세번째는 완전 무인자동차다. 이 경우 운전석이나 스티어링 휠이 필요없기 때문에 4~5명의 성인이 타고 이동을 할 수 있는 공간, 즉 모듈 형태가 될 것이다. 이정도 단계가 되면 사람들이 앉는 방식, 소통하는 방식 등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 따라서 디자인 요소도 많이 바뀔 것이다. 하지만 이 때도 안전벨트 등 기본장비는 필수다.
Q. 글로벌 시장에서 재규어 판매가 크게 늘었다. 이것이 기술적 성과인지 아니면 디자인에 의한 성과인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디자인과 기술부문(R&D)이 별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디자인의 시작부터 차가 완성되기까지 이 두가지 요소는 함께 가기 때문이다. 판매가 늘었다는 것은 첫번째로 재규어가 21세기에 맞는 차를 만들고 있고 이를 소비자들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라인업 확대도 도움됐다. 처음에는 2~3가지 모델이었지만 지금은 5가지로 늘었다. 내년에는 6~7개 모델이 출시될 것이다. 이런 결과를 얻기까지 10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Q. 재규어는 디자인 헤리티지를 중요시하는 브랜드인 것 같다. 기술적인 부분이나 캐릭터를 부각시키면서 재규어의 헤리티지를 담아내야 할 때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무엇인지?
이 이야기를 하면 좀더 이해가 쉬울 것이다. 어릴 적 재규어를 볼 때 무척 현대적이고 매력적인 차라고 생각했다. 당시 재규어를 운영했던 윌리엄 라이언스경은 헤리티지에 별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좀더 현대적이고 럭셔리하고 영국적인 감성을 잘 담아서 사람들이 보는 것을 즐기고, 타고 싶어하고, 사고 싶어하는 차를 만들자’는 생각이었다.
헤리티지가 강하다는 것은 장점이기는 하지만 그것의 노예가 되어서도 안된다. 진정한 헤리티지는 현대적인 아름다움과 퍼포먼스가 적당히 어울릴 때 빛을 발한다. 과거의 유산을 잘 다듬어서 디자인에 반영하면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디자인을 이끌어낼 수 있다.
Q. 요즘 재규어는 패밀리룩이 많이 강조돼 있다. 앞으로 나올 차들은 다른가?
재규어는 지난 15년간 고객들에게 브랜드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이제서야 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재규어를 인식하고 있지만 더 많이, 깊이 각인시키고 싶다. 이를 위해 비슷한 다자인 요소를 넣어 패밀리룩을 만드는 것이다.
BMW, 벤츠 하면 곧바로 떠올리는 고유 이미지가 있지만 재규어에겐 아직 그런 부분이 부족하다. 때문에 패밀리룩을 만들었다고 하면 이해가 되는가?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기 때문에 패밀리룩을 계속 가져가겠지만 방식은 조금 달라질 것이다. 전기차 같은 경우 어떤 플랫폼을 쓰느냐에 따라 디자인이 바뀐다. 지금은 다섯가지 모델이 패밀리룩으로 디자인되고 있다.
다른 얘기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는데, 전기차의 경우 프론트 그릴이 필요없거나 테슬라처럼 앞이 뚝 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전기차라고 앞모습을 바꿔야 할 이유는 없다. 전기차도 프론트 그릴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를 살려 디자인할 것이다.
Q. 가장 좋아하는 차는 무엇인가, 그리고 지금 타는 차는?
가장 좋아하는 차는 ‘다음에 나올 차’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i-페이스 콘셉트카가 현재로선 가장 마음에 든다. 다음에 나올 차인 것도 그 이유지만, 오랫동안 만들고 싶었던 콘셉트였다. SUV를 가지고 스포츠카의 느낌이 나는 차 또는 완전히 새로운 동력원을 쓰는 차를 만들어보고 싶은 오랜 꿈이 있었다. 이 차가 무척 마음에 들고, 재규어에 큰 성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은 콘셉트카 단계이고, 디자인적으로 과장된 부분도 있지만 앞으로 16개월 뒤에는 도로에서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며, 흔히 보던 차와 느낌이 많이 다를 것이다.
지금 타고 있는 차는 F-타입 쿠페다. 회사에서 6개월마다 새차를 내주는데, 그동안 연거푸 넉대를 탔다. 그전에는 XK였다. 스포츠카는 굉장히 이기적인 차이고, 그렇기 때문에 스포츠카를 좋아한다.
Q. 이번 공모전은 재규어의 글로벌 사업 차원에서 후원한 행사라고 들었다. 제한적이지만 재규어가 카디자이너 지망생들에게 꿈을 펼쳐보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고맙게 생각한다. 당신도 어려서부터 카디자이너를 꿈꿨고, 실제로 14세 때 재규어로부터 격려편지를 받았다고 들었다. 그런 관점에서 공모전에 대한 소감이 궁금하다. 글로벌 공모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국가 규모의 공모전을 진행한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그전에 미국에서 대학별로 혹은 대학 대 대학 방식으로 진행한 적은 있다. 한국에서 열린 이번 행사는 생각보다 좋은 성과를 냈고,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도 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행사는 마케팅이나 홍보부서와 의논해서 결정을 해야 한다. 이런 행사를 열면 한층 다양한 제안이 쏟아져 더 흥미로울 것 같다.
한국 대학생들은 카디자인에 대한 열의가 굉장히 높은 것 같다. 앞으로 글로벌 공모전을 개최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열린다면 한국 학생들이 상위권에 들 것이라 생각한다.
Q. 최근 럭셔리 SUV들이 앞다퉈 나오고 있다. 2016년 나온 재규어의 F-페이스도 럭셔리 SUV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이 차를 다른 브랜드와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
미적으로 굉장히 훌륭한 차라고 자부한다. 우리가 만든 SUV는 스포티하고 스타일리시하면서 실용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다. 운전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다른 SUV에 비해 운전 재미도 훨씬 뛰어나다. 두가지로 요약하면 스타일과 퍼포먼스다.
Q. 예전 인터뷰에서 크고 화난 것처럼 보이는 그릴을 싫어한다고 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자동차 디자인은 전체적인 균형이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강인해 보이고 자신감 있어 보이는 모습을 좋아한다. 이것은 난폭하거나 도발적으로 보이는 것과는 다른 얘기다. 전체적으로 강인해 보이되 은근히 드러나는 디자인을 선호한다. 프론트 그릴이 너무 커서 아이들이 무서워하는 경우도 있는데, 개인적으로 별로다. 최근 많은 메이커들이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이렇게 만드는 경향이 있지만 재규어는 그런 방향으로 가고 싶지 않다.
Q. 패밀리룩과 습관적인 디자인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재규어의 경우 신구 디자인의 차이가 크지 않은 것 같다.
큰 그림을 그리면 재규어차들은 익사이팅한 프로파일을 갖고 있다. 30년 전과 비교해도 과거와 요소들의 변화는 거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좀더 스포티하고 흥미진진한 모습을 담아내려고 늘 노력해왔다. 요즘 다른 브랜드들이 이런 특징을 따라하는 경향이 있다.
F-페이스라든지 F-타입의 경우 프로파일이 굉장히 다르고, XE와 XF도 마찬가지다. 결국 재규어의 프로파일은 차의 크기와 비율로 결정되는 것이다. 지난 5~6년 동안 우리는 의도적으로 비슷한 모습을 담아냈다. 브랜드를 정립시키고 키워나가기 위한 노력의 일부다. 프론트 그릴은 재규어의 아이콘이기 때문에 그대로 유지할 것이다. 루이비통 가방이 똑같은 패턴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Q. 프리미엄에 대한 정의를 해달라.
프리미엄 제품은 더 강해 보이고 개성이 뚜렷해야 한다. 프리미엄 브랜드는 제작비에 여유가 있는 게 최대의 강점이다. 비용이 넉넉하면 휠의 사이즈를 키우고 첨단소재를 쓰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다. 인테리어나 기능적인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