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으로 사라진 자동차 브랜드, 허드슨
2017-03-03 15:07:53 글 박영준 (자동차 칼럼니스트, 단국대 법과대학 교수)
코모도어
허드슨은 20세기 전반 미국 중산층에서 큰 인기를 모은 자동차 브랜드였다. 오픈카가 표준이던 당시에 강철제 지붕을 얹은 차를 만들어, 폐쇄형 자동차의 표준이 되었고, 단순한 쇠막대에 지나지 않았던 범퍼를 충격흡수식으로 바꾸는 등 기술적으로도 많은 진보를 이루었다.
능력 있는 자동차 판매원 출신으로, 후에 미국 고속도로의 기초를 닦은 로이 샤팽(Roy D. Chapin)은 디트로이트의 백화점 운영자인 조셉 허드슨(Joseph L. Hudson)의 투자를 받아 1909년 허드슨자동차를 설립했다. 넉넉한 자본과 뛰어난 경영수완을 바탕으로 회사는 설립 2년만에 급격한 성장을 이룬다.
코모도어
샤팽은 당시 인기가 좋았던 포드 모델 T와 경쟁하기 위해 1918년 에섹스(Essex)를 발표했다. 이 차는 값이 저렴하면서도 모델 T와 달리 강철 지붕이 달렸다. 눈비를 피할 수 있는 포근한 실내 덕분에 에섹스는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허드슨은 황금기를 누리게 됐고, 1929년에는 창립 이래 처음으로 30만대 생산을 돌파했다. 이는 포드, 쉐보레에 이어 세번째로 큰 규모다. 미국 외에 영국과 벨기에에도 조립공장을 세울 정도로 회사 규모도 커졌다.
페이스메이커 엔진룸
그러나 1929년 덮친 경제 대공황을 기점으로 자동차 판매가 급감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주력모델인 에섹스는 높은 제조단가 때문에 팔수록 손해를 보는 상황에 직면했다. 근근이 명맥을 이어가던 허드슨은 제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인 1942년, 자동차 제작을 중단하고 항공기용 인베이더 엔진을 생산하기로 한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1948년, 다시 모노코크 보디를 사용한 새로운 디자인의 차를 선보이게 된다. 대형차 코모도어(Commodore)와 중형차 페이스메이커(Pacemaker), 호넷(Hornet) 등 다양한 모델이 생산됐다. 모두 가볍고, 낮은 최저지상고로 안정감이 뛰어났으며, 탄탄한 서스펜션을 사용해 핸들링도 좋았다. 브레이크 역시 나무랄 데 없는 성능을 자랑했다.
호넷 쿠페
허드슨은 1951년부터 나스카 레이스에 뛰어들어 호넷 경주차로 4년 연속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이 기록은 오늘날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1952년에는 34회 출전해 27회 우승했는데, 승률이 무려 80%에 달했다. 말그대로 ‘전설적인 허드슨 호넷’이었다.
1950년대 들어 미국에선 단단한 서스펜션을 쓴 6기통 대신 출렁거리는 서스펜션과 8기통 엔진을 사용한 대배기량 차들이 큰 인기를 끌게 됐다. 시류를 따르지 못한 허드슨은 자연히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갔다.
호넷 컨버터블
허드슨자동차는 빅3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1954년오랜 경쟁사인 내시(NASH)자동차와 합병, AMC(American Motors)로 바뀐다. 하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1958년 AMC 경영진은 허드슨과 내시자동차를 단종하기로 결정한다. 자동차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던 허드슨은 이렇게 50년을 채우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