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백 투 더 퓨처>의 바로 그 차, 드로리안
2017-06-12 14:03:09 글 박영준(자동차 칼럼니스트, 단국대 법과대학 교수)
영화를 본 사람은 타이어가 만든 불꽃 스키드마크를 남기며 과거와 미래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타임머신을 기억할 것이다. 그 강렬한 은색 스포츠카가 바로 드로리안 DMC-12다. 영화의 성공으로 많은 사람이 DMC-12를 알고 있지만, 창업자인 드로리안의 인생 또한 영화만큼이나 드라마틱하다.
미국 출신의 존 드로리안(John Z. De Lorean, 1925∼2005)은 어렵고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으나 명석한 두뇌와 기계에 대한 남다른 감각을 바탕으로 디트로이트 공업고등학교를 1등으로 졸업하고, 장학금을 받으며 공과대학에 진학했다. 졸업 후 1950년 크라이슬러에 입사했고, 1953년 패커드로 옮겼으나 이듬해 회사가 스튜드베이커에 합병됐다. 디트로이트를 떠나기 싫었던 그는 GM으로 이적해 폰티악에서 근무하게 되었고, 뛰어난 성과를 올려 1961년 수석엔지니어로 진급했다.
1970년 GM은 드로리안을 판매부진으로 어려움을 겪던 쉐보레의 기술개발이사로 임명했다. 그의 노력 덕분인지 쉐보레는 300만대 판매 돌파라는 신기록을 수립하며 단일 브랜드로서 포드그룹 전체에 맞먹는 매출을 올렸다. 그리고 1972년 마침내 GM 부회장에 올랐다. 가난했던 고학생 출신의 남자가 47세에 이룬 아메리칸 드림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자리에서 내려오게 된다. 답답하고 규격화된 회사 문화가 싫었기 때문이다.
1975년 드로리안은 자신의 이름을 딴 드로리안자동차(De Lorean Motor Company, DMC)를 창업했다. 자동차업계를 떠난다고 선언했기에 그의 귀환은 디트로이트를 시끄럽게 했다. 열악한 자금 사정과 자동차업계의 비협조로 출발은 순조롭지 못했다.
자금이 부족했던 드로리안은 공장부지 제공, 세금감면 등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한 영국정부의 의견을 받아들여 북아일랜드 던머리(Dunmurry)에 공장을 지었다. 1976년 첫모델 DMC-12가 나왔다. 이 차는 이탈리아의 쥬지아로가 디자인한 강력한 인상의 스포츠카로, 백본(Backbone) 섀시에 푸조-르노-볼보가 생산한 V6 2,800cc 엔진을 얹었다. DMC-12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차체를 스테인레스 스틸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녹슬지 않는 스테인리스 스틸이 가장 이상적인 소재라고 주장했다.
드로리안은 실패를 모르던 능력남이었지만 회사의 앞날은 꼬여만 갔다. 자금 부족으로 공장의 완공이 늦어지고, 생산도 지체되어 1981년에야 차를 내놓을 수 있었다. 게다가 영국 파운드화의 폭등으로 미국 판매가가 2배 이상 뛰어 2만5,000달러에 달했다. 품질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환기장치가 작동하지 않아 작은 창이 달린 실내는 무척 더웠으며 뛰어난 자태를 자랑하는 걸윙도어는 개폐가 원활하지 않고 비가 샜다. 심지어 도어가 너무 무거워 열었을 때 이를 지지하는 실린더가 고장나는 경우도 있었다. 이 차의 특징이었던 스테인레스 스틸 차체는 세차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고객의 불만까지 겹쳐 판매량이 급감했다.
1982년 10월 드로리안이 파산을 막으려고 2,400만달러어치의 코카인을 미국으로 밀반입하려다 FBI에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드로리안의 이미지는 땅에 떨어졌고, 그해 12월 파산했다. 몇년 뒤 코카인 밀수는 무혐의로 밝혀졌지만 재기하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회사가 망한 후인 1985년 제작된 영화에서 DMC-12가 타임머신으로 사용되면서 드로리안은 일종의 컬트카로서 큰 인기를 얻었다. 게다가 세차가 불가능해 인기가 없었던 스테인레스 스틸 차체는 녹이 슬지 않아 생산된 지 25년이 넘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쌩쌩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2년이 안되는 기간 동안 DMC-12는 9,200여대가 생산됐고, 현재 약 6,500대가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드로리안은 빚쟁이가 되어 이혼까지 하고 굴곡진 삶을 살다가 2005년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한편 버려져 있던 DMC는 2007년 미국인 사업가에 팔렸고, 그 후 공장에 남아 있던 부품을 이용해 몇백대의 차가 더 만들어졌다. 새 DMC회사는 미국에 있으며 복원과 주문생산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HISTORY
1950 : 크라이슬러에 입사
1970 : 쉐보레의 기술이사가 됨
1972 : GM 부회장이 됨
1975 : 드로리안자동차 창업
1976 : DMC-12 출시 1981 : DMC-12 생산 시작
1982 : 파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