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제원표는 차의 크기와 무게, 엔진 형식과 출력, 연비 등을 보여준다. mm, kg 단위가 붙은 이런 수치들은 자동차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은 사람도 이해할 수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자동차에 관심 있는 사람은 제원표만 보고도 그 차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 유추해낸다. 그러나 한번에 알아보기 어려운 제원도 있다. 그중 몇가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숫자만 보고 엔진 특성을 알 수 있다
엔진 배열, 실린더수, 보어/스트로크, 엔진 압축비
엔진 배열 방식과 실린더 수 같은 엔진 관련정보는 보통 제원표의 맨 윗자리에 표기된다. 대부분 무슨 뜻인지 알고 있겠지만, 한번 더 짚어 보도록 하자.
직렬 6기통은 실린더 6개가 나란히 붙어 있다는 뜻이고, V6는 6개의 실린더가 3개씩 V자 형태로 마주보는 구성이다. 같은 원리로 V8, V10, V12 엔진이 구성된다. W12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V6 엔진이 엇갈려 W자 모양으로 붙어 있는 모양새가 된다.
보어와 스트로크는 배기량을 계산하고 엔진 특성까지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다. 보어는 실린더의 내경, 스트로크는 피스톤이 상사점에서 하사점까지 이동한 길이다. 보어와 스트로크 수치를 원기둥의 부피를 구하는 공식 ‘{πx(보어/2)2x스트로크}’에 대입하면 실린더 하나의 부피를 구할 수 있다. 여기에 실린더 개수를 곱하면 대략적인 배기량이 나온다. 보통 보어가 스트로크보다 크면 고회전에 유리하고, 스트로크가 크면 실린더의 1회 폭발력이 커져 토크가 센 엔진이 나온다.
제원표에 15.5:1 등으로 표기되는 압축비는 무엇일까? 쉽게 말하면 피스톤이 실린더에 들어간 혼합기를 압축하는 비율이다. 즉 피스톤이 하사점에 있을 때의 피스톤 상부 용적과 상사점의 피스톤 상부 용적(연소실 용적) 사이의 부피차이라고 보면 된다.
압축비는 ‘(피스톤 상부 용적+연소실 용적)÷연소실 용적’ 공식으로 계산할 수 있다. 따라서 압축비가 15.5:1인 벤츠 E 220 d의 제원을 풀이하면 연소실 비율을 1로 가정했을 때, 피스톤의 왕복운동 부피가 15.5배라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연소실에 연료를 직접 분사하는 디젤 엔진의 압축비가 가솔린 엔진보다 크고, 압축비가 클수록 큰 힘을 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가솔린 엔진에도 직분사 방식이 쓰이면서 압축비가 높아지고 있다.
다 같은 무게지만 ‘뭣이 중헌가’의 차이
공차중량, 건조중량, 허용 가능 총중량, 허용 루프 하중
모두 무게를 나타내지만 내용이 다르다.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일반적인 제원표에는 공차중량이 표기된다. 각종 오일, 냉각수, 연료를 가득 채우고, 사람과 짐이 포함되지 않은 상태에서 잰 무게다. 차체가 얼마나 가벼운지 자랑하기 위해 페라리 같은 일부 스포츠카에서 사용하는 건조중량은 앞에 적은 오일류 등을 제거했을 때의 무게다.
허용 가능 총중량은 승차인원을 모두 태우고 짐을 가득 실었을 때의 무게다. 예를 들어 공차중량 1,675kg인 포르쉐 911 터보 S의 제원표(영국 기준)에 표기된 1,990kg의 허용 가능 총중량을 해석하면 315kg의 승객을 태우고, 짐을 실을 수 있다는 뜻이다.
허용 가능 총중량을 표기하는 이유는 이 무게를 넘어서면 자동차가 제 성능(예를 들어 제동력)을 발휘하지 못해 심할 경우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니 컨트리맨 등의 제원에 표기된 75kg의 허용 루프 하중은 지붕에 실을 수 있는 짐 무게다. 따라서 지붕에 사람이 장시간 올라가 있거나 하중치 이상의 짐을 실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차체 너비보다 더 중요한 바퀴 사이의 거리
윤거(트레드, 트랙)
제원표마다 조금씩 다르게 표기되지만 좌우 바퀴의 중심선 사이의 거리를 의미한다. 차체 좌우 너비와 헷갈리는 경우가 많으나 엄연히 다르다. 앞뒤 윤거가 같은 차도 있지만 대부분 앞이나 뒤, 둘 중 하나를 길게 만든다. 어느쪽이 더 좋다, 나쁘다를 따질 수 없고, 같은 차종이라 하더라도 타이어 폭이나 성능 제원에 따라 세부 차종의 앞뒤 윤거가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참고로 차체 너비 제원을 표기할 때는 차체의 가장 바깥쪽을 기준으로 한다. 사이드미러를 포함할 때는 ‘사이드미러 포함’ 또는 ‘미러를 폈을 때’ 같은 표기가 따라 붙는다.
수동, 자동, 듀얼클러치의 차이보다 더 중요한 변속기의 소수점 숫자
기어비, 최종감속비
제원표에서 변속기 정보를 볼 때 소수점 숫자들이 빼곡히 적혀 있는 부분이 바로 변속기의 기어비다. AMG GT S의 제원표를 예로 들면 ‘3.40/2.19/1.63/1.29/1.03/0.84/0.63’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 복잡한 숫자의 의미는 무엇일까?
기어비는 쉽게 말해 엔진 회전수와 프로펠러샤프트 회전수 차이를 보여주는 숫자다. 일반적으로 프로펠러샤프트의 회전수를 1로 고정하고, 엔진이 몇번 회전하는지를 따져 기어비를 계산한다. 즉 1단 기어비가 3.4이면, 엔진이 3,400rpm으로 회전할 때 프로펠러샤프트의 회전수는 3.4분의 1로 줄어 1,000rpm으로 회전한다는 뜻이다. 보통 1~3단까지는 기어비가 크다(예로 든 AMG GT S는 초반 가속력을 높이기 위해 1, 2단 기어가 상대적으로 크다). 높은 회전수에서 만들어지는 엔진의 큰 힘을 프로펠러샤프트나 드라이브샤프트를 거쳐 바퀴로 전달해 가속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반면 4단 이후부터는 기어비가 낮아지고 6단, 7단 등은 기어비가 0 이하로 떨어진다. 기어비가 이렇게 되는 이유는 회전수를 확 내려 연비를 높이기 위해서다. 다시 AMG GT S를 예로 들자.
5단 기어비가 1.03에 불과하다. 그러면 프로펠러샤프트가 1,000rpm 회전한다고 가정했을 때 엔진은 1,030rpm을 유지해 기어비가 큰 기어를 쓸 때보다 연비를 높일 수 있다. 그럼 기어비가 0 이하인 건 무엇을 뜻할까? 이게 바로 오버드라이브다. 프로펠러샤프트의 회전수보다 엔진 회전수를 낮게 가져가 연비와 엔진음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최종감속비는 엔진과 프로펠러샤프트를 거쳐 온 회전수가 드라이브샤프트에서 얼마나 낮아지는지 보여주는 비율이다. AMG GT S의 제원표를 보면 최종감속비가 3.67로 되어 있다. 이걸 해석하면 기어비가 2.19인 2단 기어를 넣게 됐을 때, 프로펠러샤프트는 엔진 회전수의 2.19분의 1로 회전을 하며, 이 회전수는 다시 디퍼렌셜 기어에서 3.67분의 1만큼 줄어들어 드라이브샤프트로 전달된다.
길이와 각도를 알아야 오프로드를 잘 달릴 수 있다
도강깊이, 접근/이탈 각도, 램프 각도, 프론트/리어 액슬 간격
랜드로버 전 차종의 제원표에서 볼 수 있는 도강깊이는 오프로드 주행 시 매우 필요한 정보다. 단어 뜻 그대로 자동차가 지나갈 수 있는 물의 깊이를 의미한다. 장애물을 타고넘을 수 있는 최저지상고와는 완전히 다른 의미다.
랜드로버에서 프론트/리어 액슬 간격이라고 표현한 이 제원은 사실, 최저지상고다. 보통은 차체 바닥의 가장 낮은 부분과 지면의 거리를 나타내는데, 랜드로버는 친절하게 앞뒤 차축의 지상고를 따로 표기하고 있다.
접근/이탈 각도는 범퍼와 바퀴 사이의 각도다. 즉 접근 각도는 앞범퍼 끝과 앞바퀴를 일직선으로 연결했을 때의 각도라고 보면 된다. 레인지로버의 경우 접근 각도가 26°인데, 에어 서스펜션으로 지상고를 올리면 34.7°까지 커진다. 램프 각도는 바퀴와 휠베이스 정중앙 사이의 각도다. 램프 각도가 중요한 이유는 커다란 장애물을 타고넘을 때 차체 바닥 중앙부분이 장애물에 닿는지의 여부를 미리 파악할 수 있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