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 가뭄으로 목이 말랐던 디스커버리가 벌컥벌컥 물을 들이키고 있다
자동차를 타다 보면 한계가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의 고성능 스포츠카가 그렇다. 일상적인 주행에서는 엔진 회전수를 레드존까지 올릴 일이 거의 없고, 물리적인 접지력이 어디까지인지 도무지 알기 어렵다. 한계치를 맛보려면 서킷이라도 달려야 하지만 웬만한 담력과 실력으로는 근처에도 갈 수 없다.
신형 디스커버리를 타면서 일반적인(?) 자동차에서도 한계치를 경험하기가 쉽지 않다는 걸 알았다. 온로드에서는 쉽게 한계를 드러냈지만 오프로드에서는 아니었다. 그런데 기자는 운 좋게도 신형 디스커버리의 한계치를 잠깐이나마 경험할 수 있었다. 지난 6월 27일 서울 양재동과 경기도 양평 대부산 설매재 인근에서 열린 랜드로버코리아의 ‘디스커버리 익스피리언스’를 통해서였다.
시작은 험난한 인공구조물 코스 통과였다. 언덕, 계단, 테라포드, 시소&수로, 사면, 범피 등의 코스가 디스커버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30° 각도에 가까운 언덕코스를 밑에서 올려다볼 땐 과연 오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2단 트랜스퍼케이스를 로 레인지에 두고, 지상고를 최대치에 맞추는 것만으로 가뿐하게 올라섰다.
▲ 저기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갈 수 있나요?
시작부터 빡세게 달린 때문인지 나머지 코스는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전자동 지형반응 시스템2를 코스에 따라 바꾸고, 액셀 페달만 잘 조절하면 모든 게 해결됐다(코스를 내려갈 땐 HDC를 최저속도로 맞추면 되어 브레이크를 밟을 필요가 없다).
30° 각도의 사면코스를 통과할 땐 지면에 닿는 쪽의 에어 서스펜션이 차체를 띄워 경사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신기한 경험도 했다. 동반석에 앉아 기울기가 40°에 가까운 테라포드를 통과할 때만 긴장됐을 뿐 나머지 코스는 시시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주행을 마치고 차에서 내려 뒤돌아보니 절대로 시시한 코스가 아니었다. 디스커버리가 대단한 것이었다.
몸풀기를 끝내고 진짜 오프로드 주행이 시작됐다. 대부산 설매재에 마련된 특설코스는 디스커버리처럼 덩치 큰 SUV에겐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길은 좁고 가팔랐으며 노면은 차가 지나가도 되는 곳인지 의심이 들 정도로 불규칙했다. 하지만 디스커버리는 전자동 지형반응 시스템을 잔디/자갈/눈길에 맞추고 큰 힘을 발휘하는 로 레인지를 선택하는 것만으로도 손쉽게 달려냈다.
구동력을 잃거나 (프레임 방식에서 알루미늄 모노코크로 바뀐) 차체에서 삐그덕 소리가 나는 등의 불안한 기미는 전혀 없었다. 에어 서스펜션과 모노코크 보디의 충격 흡수력도 뛰어나 온로드를 달리는 것 같은 편안함도 느껴졌다. 코스가 너무 쉬워 나중에는 소나기가 한바탕 내려 진흙탕이 되길 바랐을 정도다. 설사 그랬더라도 디스커버리는 듬직하게 올랐을 것이다.
코스가 너무 쉽다는 생각이 들 무렵 설매재 정상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디스커버리의 진정한 한계를 맛봤다. 시작은 700mm 깊이의 인공 웅덩이를 통과하는 도강 코스다. 유튜브에서 볼 땐 액셀 페달만 냅다 밟으면 쑥쑥 앞으로 나가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물결에 따라 차체가 좌우, 앞뒤로 휘청거렸고 바퀴가 미끄러지기도 했다.
최대 900mm의 물길을 건널 수 있는 디스커버리에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자연스럽게 액셀 페달을 밟으면 잠수함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처럼 부드럽게 물길을 헤쳐나간다. 신형 디스커버리의 유선형 보디는 공력특성뿐만 아니라 물을 가를 때도 큰 도움이 되는 게 분명하다.
이어서 흙을 파고 깎아서 만든 범피 코스가 이어졌다. 바퀴 2개가 허공에 뜨는 것은 기본이고 그 상태에서 두더지잡기 게임마냥 구멍이 숭숭 뚫린 곳을 달려야 했다. 차체 강성과 서스펜션의 유연한 움직임 그리고 네바퀴굴림 시스템의 구동력이 받쳐주어야만 통과할 수 있는 코스다. 당연히 디스커버리는 이 모든 걸 갖췄고, 아주 손쉽게 달려냈다.
마지막은 30°가 넘는 경사로다. 바퀴가 쉽게 미끄러지는 흙길인 탓에 오르기 쉽지 않아 보였다. 실제로 먼저 올라간 몇몇 디스커버리는 바퀴가 미끄러지며 먼지바람을 일으키는 장관을 연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빠르게 구동력을 회복해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산길을 유유히 올라갔다.
기자가 탄 디스커버리는 운전실력이 뛰어나서 그런지 아니면 차의 컨디션이 좋아서 그런 것인지, 단번에 경사로를 올라갔다. 심지어 하이 레인지를 썼는데도 말이다.
일상에선 좀처럼 만나기 힘든 길을 하루종일 달리면서 신형 디스커버리의 한계치를 충분히 맛봤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인터넷에 올라온 디스커버리의 하드코어 오프로드 주행 영상을 보니 그게 아닌 것 같다. 이쯤 되니 이 차의 한계가 어디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어쩌면 아무도 모를 수 있다. 심지어 신형 디스커버리를 만든 랜드로버조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