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사이클 좀 알고 좋아한다는 사람 중에 GS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GS는 BMW 모토라드를 대표하는 듀얼퍼포스 모터사이클로, 오프로드와 온로드를 뜻하는 독일어 Gelande와 Straße의 앞글자를 따서 만들었다(최근 들어 S가 스포츠를 지칭하는 의미로 바뀌고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GS는 온·오프로드를 아우르는 전천후 주행성능에 장거리를 하루종일 달릴 수 있는 편안함을 겸비하고 있다. 대부분의 라이더가 이런 매력 때문에 GS를 선택한다. 하지만 GS로 오프로드를 내달리는 라이더는 많지 않다. 커다란 덩치와 비싼 값으로 인한 심리적 부담감이 만만치 않아서다. 하지만 GS의 매력을 극한으로 이끌어내는 ‘GS 트로피’를 한번이라도 봤다면 이런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
GS 트로피는 2008년 시작되어 2년마다 세계 각지를 돌며 열리는 GS 라이더들을 위한 축제이자 챌린지 이벤트다. 각국에서 3명의 대표가 참가하는데, 한국팀은 2014년 북미에서 열린 GS 트로피를 시작으로 2016년 GS 트로피 동남아시아에 참가했고, 내년 여름 몽골에서 개최되는 GS 트로피 중앙아시아에도 3명의 라이더가 참가할 예정이다.
몽골 행사에 출전할 대표 선발전이 지난 6월 17~18일 충추 목계나루 인근에서 개최됐다. 대표 선발전만 치른 2013년 및 2015년 행사와 달리 이번엔 캠핑 투어가 함께 열려 BMW 모토라드를 타는 라이더와 가족, 친구, 연인 등 250여명이 참가해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사실 GS 트로피는 소수의 GS 라이더를 위한 축제의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GS의 참맛과 잠재된 능력을 알기 어렵다. 하지만 올 행사는 GS 트로피 예선전과 캠핑이 함께 열려 더 많은 사람이 GS의 매력을 알게 됐다.
캠핑장으로 향하는 약 150km의 길을 GS 시리즈의 기함인 R 1200 GS 어드벤처로 달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엄청나게 편하고 부드러우면서 재미있군. 이런 덩치로 어떻게 타이어가 푹푹 빠지는 모랫길을 달리고 통나무를 건너며, 가파른 언덕을 오를 수 있지? 우주 명차라 불리는 GS지만 쉽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런데 아니었다. 선발전에 참가한 24명의 라이더는 순수 아마추어임에도 놀라운 실력을 보여줬다. 한낮 기온이 33℃를 훌쩍 넘는 뜨거운 날씨도 아랑곳 않고 참가자들은 엄청난 체력과 기술, 열정을 쏟아냈다.
17일 열린 예선전은 참가자 개인의 GS로 진행됐는데, 대부분 890mm의 높은 시트와 무게가 260kg에 달하는 R 1200 GS 어드벤처 라이더였다. 어드벤처를 직접 타본 입장에서 그 큰 모터사이클로 험한 코스를 자유자재로 달리는 모습이 놀랍기만 했다. 그리고 이번 선발전을 위해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을지 눈에 선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올림픽경기 국가대표 선발전을 뛰어넘었다.
이틀간 바이크 끌고 달리기, 통나무 썰기 등의 체력 테스트와 통나무, 모래, 물웅덩이, 언덕 통과 등의 고난도 스킬 챌린지 코스 그리고 영어 회화 테스트 등을 거쳐 마침내 3명의 국내 대표가 가려졌다. 영광의 주인공은 권혁용(1위), 최동훈(2위), 김선호(3위) 씨다.
그중 권혁용 선수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참가자 중 나이가 가장 많고(45세), 2015년 선발전에서 4위로 아깝게 탈락한 이력이 있다.
내년 여름 몽골에서 열리는 GS 트로피 참가자는 3명이지만 선발전에 나온 라이더들은 온힘을 다해 실력을 발휘했다. 무엇이 그들을 미친듯이 달리게 만들었을까? 현장을 목격한 사람이라면 그 원동력이 열정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2018 GS 트로피 한국대표 권혁용
GS 트로피 한국대표 선발전에서 1위를 한 권혁용 선수를 만나봤다. 세 자녀의 아버지이자 방송국 촬영기자인 그는 모터사이클을 탈 때만이 아니라 매순간을 열정적으로 살고 있었다.
Q GS 트로피는 어떤 계기로 참가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A GS를 타면서 자연스럽게 세계일주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세계일주를 위해선 오프로드를 달려야 하는데, 그때 필요한 실력을 쌓고자 오프로드 스쿨을 찾았다. 그곳에서 GS 트로피 2014에 참가한 분들을 만났고, GS로 오프로드를 달리는 새로운 세상이 있다는 걸 알았다.
자연스럽게 오프로드를 달리는 재미에 빠져들었고, 나름 이쪽 분야에 소질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자신감 반, 부추김 반으로 참가를 결심했다. GS를 탄 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20대에 시작한 모터사이클 경력과 체력, 운동신경이 남들보다 뒤쳐질 게 없다고 판단해 도전하게 됐다.
Q 2015년 선발전에서 아깝게 4위를 했다. 그때 심정이 어땠나?
A 사실 큰 기대를 안하고 참가했다. 하지만 예선 결과가 좋아 욕심이 생겼다. 결선은 예선전보다 훨씬 힘들어 몇번이나 포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왠걸, 다른 사람들보다 성적이 좋게 나와 내심 기대를 했던 것도 사실이다. 4위로 아슬아슬하게 떨어져 무척 아쉬웠다.
Q 2년 동안 많은 준비를 했을 것 같다.
A 좀더 체계적으로 준비했다. 체력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깨닫고 자전거나 조깅으로 출퇴근하면서 기초체력을 다졌다. 보디빌딩 자격증까지 취득했을 정도로 체력훈련을 정말 열심히 했다. 기술적인 부분은 인터넷으로 해외 프로 선수들의 고급기술을 따라하는 방식으로 연습했다.
Q 체력이나 기술 향상 외에 얻은 것도 많았을 것 같은데?
A 2년 동안 준비를 하면서 모터사이클 타는 법을 배운 게 아니라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 것 같다. 목표를 세우고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준비와 노력이 필요한지 알게 되었다. 힘들었지만 분명한 목표가 있었기에 원하던 것을 이룰 수 있었다.
Q GS 트로피가 1년 정도 남았다. 어떻게 준비할 생각인가?
A 지금까지는 혼자서 잘하면 됐고, 그렇게 준비를 했다. 그러나 이젠 아니다. 3명이 한팀이 되어야 한다. 외국 대표들의 실력이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 새롭게 훈련을 해야 할 것 같다. 기대도 크다. 현대문명이 거의 닿지 않은 원시자연에서의 캠핑과 라이딩이 어떤 즐거움을 줄지 벌써부터 설렌다.
Q GS 트로피 한국대표라는 꿈을 이루었다.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
A GS 트로피에 빠져든 계기를 마련해준 세계일주를 생각하고 있다. 현재 내 나이가 45세인데, 50대가 끝나기 전에 도전할 생각이다. 꼭 세계일주가 아니더라도 더 넓은 세상을 보면서 살아야겠다는 대략적인 계획을 세워놨다. 하지만 아직 구체화된 것은 없다.
내년 GS 트로피 때 세계 각지에서 온 100명의 친구를 만나고 교류를 하다 보면 새로운 것을 알고, 보게 될테니 그때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지 않을까? 2018 GS 트로피를 잘 준비하는 게 당면 목표다.
Q 다음 행사에 참가할 라이더들에게 선배로서 조언을 해준다면?
A 꿈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구체적인 목표와 계획을 세워 준비해야 한다. 단순히 ‘대회에 나가고 싶다’가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구체적이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볼 땐 허무맹랑하더라도 자신이 생각할 때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면 상관없다. 계획대로 차근차근 나아가다 보면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