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 가이(Car Guy)’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2016-05-10 09:13:12 글 리차드 정(YFAI 디자인 총괄 부사장)
열정이 담겨야 소비자의 마음을 훔쳐올 수 있다. VW 마티아스 뮐러 신임 회장이 그러길 바란다
대표적인 ‘카 가이’인 GM의 밥 루츠 전 부회장(사진 맨 왼쪽)
애플 창시자 스티브 잡스, 수년 전 GM에서 은퇴한 밥 루츠, 그리고 폭스바겐 그룹에서 지난해 밀려난 페르디난트 피에히.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제품에 대한 열정을 통해 회사를 부활시켰다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그들은 제품을 어떻게 디자인하고 개발을 해야 소비자에게 어필을 할 수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흔히 자동차 업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잘 때나 깨어있을 때나 자동차에 미쳐서 열정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을 ‘카 가이’(Car Guy)라고 불렀다. 그 사람의 몸 안에는 피 대신 엔진 오일이 흐르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카 가이’를 존경하는 이유는 자동차가 냉장고처럼 단순한 기계가 아닌, 혼을 지닌 열정의 머신이기 때문이다. 달리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채워주는 기계라서 그럴까. 하긴 옛날에 말과 소의 차이에도 그렇게 느꼈을 듯싶다. 일하는 소에 대한 애착은 없었지만 타고 달릴 수 있는 말에 대해서는 ‘애마’(愛馬)라고 부르지 않는가? 지금도 아끼는 차를 애마라고 한다.
업계 역사상 최고의 ‘카 가이’는 밥 루츠였다. 스위스에서 태어나 4개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던 그는 레이싱 드라이버 못지않은 운전실력을 갖췄고 미국으로 귀화해서 해병대 전투기 파일럿으로 복무하기도 한 스피드광이다. 자동차 업계에 들어와 GM, BMW, 포드, 크라이슬러 그리고 다시 GM을 거쳐서 은퇴할 때까지 다양한 자동차 개발 작업을 지휘했다.
그는 유럽과 미국에서 오래 근무한 덕분에 소비자가 어떤 차를 원하는지 잘 알고 있었고 자동차를 속속들이 이해하는 박식한 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토대로 수많은 히트 모델을 개발했다. 2007년을 마지막으로 전세계 1위 자리를 내놓은 GM을 2011년에 글로벌 No.1 자리에 다시 올려놓고 은퇴했다.
루츠와 대등한 인물이 독일에도 있다.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의 외손자인 피에히다. 피에히는 젊은 시절 이태리의 명 디자이너이며 금세기 최고의 디자이너라고 일컬어지는 조르제토 쥬지아로가 폭스바겐의 1세대 골프를 스타일링하는 동안 그에게 디자인 연수를 받았다. 당시 습득한 디자인 관련 안목은 1993년 폭스바겐 그룹의 회장이 된 뒤 최고의 감성품질을 갖춘 모델을 출시하게 된 밑거름이 됐다.
실제로 1996년형 폭스바겐 파사트와 1997년형 아우디 A6는 그 전까지 접하지 못했던 최고 수준의 감성품질과 디자인을 지녔고 전세계 디자이너들과 엔지니어들 사이에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 당시 포드 그룹의 감성품질 총괄을 맡고 있던 필자 역시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 이후 필자는 회사의 특명을 받아 아우디의 본고장 잉골슈타트에 가서 그들의 감성품질 노하우를 살펴보게 됐다. 학연, 지연 등의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거의 산업스파이처럼 여러 가지 정보를 캐내던 중에 관계자들로부터 피에히 회장에 관한 일화를 들었다.
당시 폭스바겐 그룹이 개발하던 모든 자동차는 피에히 회장이 직접 품평을 하고 개선 작업을 지시(불호령을 내리며 다그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루를 분 단위로 쪼개 움직여야 하는 거대 자동차 기업 최고경영자가 이렇게 실무작업까지 챙긴다는 것은 대단한 열정 없이는 불가능하다. 피에히로부터 역량을 인정받아 최근까지 폭스바겐 그룹을 경영한 빈터콘 회장도 모든 차종을 일일이 챙겼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는 설명할 필요도 없는 인물이다. 아깝게 젊은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떴지만 그가 애플에 복귀해서 일할 당시에는 내부에서 폭군으로 불릴 정도로 제품 디자인과 기능에 대해서 한 치도 양보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와 반대하는 직원이 그 자리에서 해고당하는 일도 종종 있을 정도로 ‘나의 길 아니면 퇴사의 길’(my way or high way)의 원칙을 고집했다.
디자이너가 아니었음에도 누구보다 보는 눈이 탁월했고 우수한 통찰력과 담력을 통해 제품의 콘셉트와 비전을 제시할 줄 알았다. 평소 소비자 반응 조사를 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대로 밀어붙이는 스티브 잡스를 폄하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는 소비자의 심리를 본인이 꿰뚫고 이해했다. 그랬기 때문에 자신과 같은 통찰 없이 리서치에만 의존하려는 사람들을 다 ‘멍청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의 열정과 통찰력은 애플을 세계 최고의 시장 가치를 지닌 회사로 성장시켰다. 그는 ‘IT의 카 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결론은 무엇인가. 회사의 성공은 제품이고, 제품은 열정을 가지고 우수하게 만들어야 한다. 소비자는 제품이 좋아서 그 회사의 제품을 사는 것이다. 열정이 느껴지지 않고 소비자의 마음을 훔쳐오지 못하는 제품은 할인 판매나 일삼다가 도태되기 마련이다.
루츠나 피에히, 또는 잡스 같은 ‘열정인’은 원가절감이나 마켓 트렌드를 따라가지 않았다. 소비자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았고 또 새로운 트렌드를 개척했다. 최근의 ‘디젤 게이트’로 폭스바겐 그룹은 확실히 매우 당혹스럽고 어려운 시기를 맞았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려면 또 한 명의 ‘카 가이’ 출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새로 임명된 마티아스 뮐러 회장이 그러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