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Dawn)을 만든 남자, 조나단 시어스 롤스로이스 프로덕트 매니저
2016-05-31 15:49:07 글 민병권 기자
“가장 자랑하고 싶은 부분이요? 주행감이죠. 고정된 지붕이 없는 이만한 크기의 차에서 이런 수준의 정숙함과 편안함, 민첩함을 구현해낸 것은 정말 대단한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시승해보면 동감하실 거예요.”
조나단 시어스는 롤스로이스 던의 제품담당자(프로덕트 매니저)다. 지난 수년간 던의 개발과정부터 출시에 이르기까지 모든 작업에 관여해왔다.
“물론 아름다운 스타일링도요. 저기 우리 젊은 디자이너도 와있으니 이 얘길 빼먹으면 섭섭해 하겠죠?” 그가 소탈하게 웃었다.
6겹의 직물로 구성된 던의 지붕 얘기는 어떻게 빼놓겠는가.
“기본 구조는 팬텀 드롭헤드 쿠페와 같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바깥 직물의 이음매를 가로방향에서 세로 방향으로 바꾸고 지지대를 추가해 한결 매끄럽고 팽팽한 외관을 구현했어요. 디자이너들이 그린 실루엣을 그대로 뽑아냈죠. 단차 없이 매끈하게 이어지는 직물의 연결부위 덕분에 미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공기저항과 풍절음도 줄일 수 있었어요. C필러에 해당하는 부분에는 흡음재를 보강해 바람소리를 줄였구요. 단언컨대, 이런 소프트톱을 제공하는 것은 롤스로이스뿐입니다.”
그는 단차 없이 이어지는 지붕 접합부의 바느질을 설명하기 위해 테이블 냅킨을 두가지 방식으로 접어 차이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의 설명을 듣다보니 롤스로이스는 소프트톱에 대한 고정관념을 뛰어넘은 듯했다.
그래서 소프트톱에는 롤스로이스의 화젯거리 중 하나인 스타라이트 헤드라이너(차의 천장에 밤하늘의 별들을 재현해주는 조명 장식) 옵션을 적용할 수 없는지 물었다. 스타라이트가 적용된 천장 안쪽에 광섬유 다발이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를 본 사람이라면 답을 모를 리 없다.
실없는 질문이지만 어떤 괴짜 고객이 비스포크 사양으로 주문을 넣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 뭔가 재미있는 얘기가 이어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예상치 못했던 답이 나왔다.
“던에는 원하는 고객모두에게 스타라이트가 기본으로 적용됩니다.”
잠깐 침묵이 흐르고야 말뜻을 이해했다. 언제든 지붕을 열면 밤하늘의 진짜 별을 볼 수 있다는 얘기였다. 우문현답이었다(검토는 했지만 기술적으로 어렵더라는 답이 이어졌다).
세계 각지에서 날짜별로 그룹을 나누어 날아오는 기자들의 궁금증을 해결해주기 위해 집에서 1만km 떨어진 곳에서 한달 가까이 객지 생활을 하고 있는 그는 꽤 지겹고 힘들 법 한데도 지붕을 열고 쌩쌩 달리는 시승차의 뒷자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던의 4인승 공간이 얼마나 ‘소셜한지’를 확인시켜주려는 듯했다.
신차 개발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디자인, 엔지니어링, 생산, 세일즈, 마케팅 등 모든 부서에 ‘고객의 소리를 전달하는 것’이었다. 애초에 던은 이런 고객의 소리를 모아 탄생한 차다.
“팬텀 드롭헤드 쿠페보다 작으면서 성인 4명이 편안하게 탈 수 있는 컨버터블을 만들어달라는 요구가 많았습니다. 예비고객들은 가족뿐 아니라 지인, 친구들과 즐길 수 있는 넉넉한 차를 원했어요. 순수하게 고객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만든 차입니다.”
기술적인 요소까지 술술 설명해주는 모습에 깜박 속기 쉽지만 그는 엔지니어 출신이 아니다. 게다가 이력이 유별나다. 롤스로이스 이전에 어떤 자동차회사에서 경력을 쌓아 이런 중책을 맡게 되었는지 궁금했는데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아내와 함께 주택을 고쳐주는 일을 했었어요. 그전에는 사무용 가구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했구요.”
BMW그룹 산하에서 새 팬텀이 출시된 직후인 12년 전 롤스로이스에 입사한 그는 한동안 AS부문에서 일하며 고객과 딜러, 엔지니어링, 생산에 대한 이해를 높였고, 그것이 최근 하는 일의 좋은 밑거름이 됐다.
“입사 당시엔 굿우드에서 만든 롤스로이스가 400대 밖에 없었죠. 하지만 매년 흥미진진한 일들이 이어졌고, 이제는 전세계에 2만6,000대 정도 있을 겁니다.”
최근 롤스로이스는 연간 4,000대 정도를 만들고 있다. 라인업 확장과 여기에 맞춰 신규 고객이 늘어난 결과다. 팬텀만 있을 때는 롤스로이스 고객의 평균 나이가 60세 이상이었다. 하지만 2009년 고스트 출시 이후 55세, 2013년 레이스가 나온 뒤로는 47세로 낮아졌다.
팬텀과 고스트의 경우 롤스로이스라는 브랜드에 대해 충분히 알고 찾아온 고객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레이스는 차를 먼저 접하고 롤스로이스에 관심을 갖게 된 고객들을 대거 유입시켰다.
던도 비슷한 역할을 하겠지만 더 폭넓은 사랑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층 여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을 향유하는 이들을 위한 차이기 때문이다. 팬텀 드롭헤드 쿠페와의 판매 간섭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2018년 돌아올 팬텀 리무진과 달리 팬텀 쿠페와 드롭헤드 쿠페는 올해를 끝으로 단종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