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벤츠의 차세대 리더, 볼프강 베른하르트
2016-06-20 09:50:21 글 박영웅 편집장
다임러에 복귀한 그가 디터 제체의 후임이 될 수 있을까?
토마호크 콘셉트 데뷔 당시 모습
2003년 1월에 열린 디트로이트 북미오토쇼 프레스데이 때다. 크라이슬러그룹 닷지 부스에 난데없이 모터사이클이 등장했다. 토마호크 콘셉트카였다. 4개의 바퀴를 갖춘 자동차와 모터사이클의 크로스오버로, 스포츠카 바이퍼의 V10 8.3L 엔진을 얹어 이론적으로 484km/h의 초고속을 낼 수 있는 차였다.
상상을 초월하는 고성능 콘셉트카를 전세계 미디어에 소개한 이는 당시 크라이슬러 그룹 COO(최고운영책임자) 볼프강 베른하르트였다. 그는 3년 전인 2000년, 만 40세의 나이로 크라이슬러 COO에 취임한 인물이다. 비즈니스 정장 대신 검정색 가죽점퍼 차림으로 토마호크를 몰고 나타난 그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은 다임러 산하에 들어온 크라이슬러의 회생을 상징하는 듯했다.
참고로 독일 다임러그룹은 1998년 미국 빅3의 막내 크라이슬러그룹을 합병했다. 고급차 메르세데스-벤츠만으로는 덩치를 키우는데 한계가 있어 대중차 브랜드인 크라이슬러를 인수해 글로벌 No.1이 되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두 회사는 시너지는커녕 불협화음만 커져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임러그룹의 핵심인재 2명이 크라이슬러 CEO와 COO로 파견됐다. 디터 제체(현 다임러그룹 CEO)와 앞서 소개한 볼프강 베른하르트가 그들이다. 베른하르트는 독일 바이에른 출신으로 1960년생이다. 다름슈타트 공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 대학 MBA 과정을 거쳐 괴테 대학에서 국제금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컨설팅 회사 맥킨지에서 일하다가 1992년 메르세데스-벤츠에 생산성 향상과 비용절감을 위한 프로젝트 매니저로 입사했다. 1994년 신형 S-클래스(W140 페이스리프트 모델)를 위한 진델핑겐 공장의 구조조정을 맡아 7개월만에 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해 뛰어난 역량을 입증했다.
AMG 부문 총괄임원으로 일하던 베른하르트가 당시 다임러그룹의 수장 위르겐 슈렘프 회장의 특명을 받아 크라이슬러로 옮길 때만 해도 그의 능력을 의심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는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던 7개의 공장을 닫고, 3만5,000명을 감원했으며 메르세데스-벤츠 구성원의 강력한 반발을 물리치고 E-클래스 플랫폼을 가져다 300C를 개발했다. 이로써 그는 업무능력을 인정받고 차세대 다임러의 CEO 후보자로까지 떠올랐다
그는 디터 제체 회장과 인연이 깊다
실제로 2004년 2월 정년을 맞은 메르세데스-벤츠 사장 후베르트의 후임으로 내정됐다. 핵심 보직을 맡게 된 만큼 다임러 그룹의 회장까지도 기대할 수 있는 분위기였으나 변수가 생겼다. 경영난에 빠진 미쓰비시 주식의 추가 인수를 거부해 위르겐 슈렘프 회장의 노여움을 산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노동자들 입장에서 저승사자나 다름없는 그에게 다임러의 노동조합에서도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메르세데스-벤츠 사장 취임을 4개월 앞둔 2004년 7월 베른하르트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회사를 떠난다. 이후 다임러그룹의 실적 악화와 주가 하락으로 슈렘프 회장이 급속히 힘을 잃고, 결국 2008년까지 보장된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2006년 1월 지휘봉을 디터 제체에게 넘겼다. 만약 베른하르트가 회사에 남아 있었다면 크라이슬러에서 호흡을 맞추었던 디터 제체가 손을 썼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백수가 된 베른하르트에게 폭스바겐그룹 CEO 베른트 피세츠리더가 손을 내밀었다. 그는 포르쉐 박사의 외손자로, 오늘날의 폭스바겐 그룹을 일군 페르디난트 피에히 회장을 설득해 베른하르트를 폭스바겐 브랜드 총괄로 데려온다. 다임러를 떠난 지 3개월만이었다. 동종업계 이적금지 조항을 고려해 1년 뒤에 공식 직함을 주는 편법까지 동원된 세기의 스카우트였다.
2009년 다임러그룹에 복귀한 베른하르트
피에히는 BMW 출신의 피세츠리더와 메르세데스-벤츠 출신 베른하르트가 대중차 전문인 폭스바겐에 고급진(?) 피를 수혈해주길 바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베른하르트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소형차 전문 폭스바겐이 페이톤, 투아렉 같은 고급 중대형차로 수익을 내겠다는 전략이 잘못됐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2005년 9월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폭스바겐의 근본 철학인 가격 대비 가치가 높은 차를 만드는데 역점을 두겠다”고 일갈하며 피에히에게 반기를 들었다.
2007년 베른하르트는 다시 폭스바겐을 박차고 나온다. 피세츠리더 회장의 사임과 맞물린 동반사퇴 형식이었다. 이후 크라이슬러를 사들인 사모펀드 서버러스의 자문역으로 일하며 기회를 엿보던 그는 2009년 메르세데스-벤츠 밴 부문 총괄로 다임러그룹에 복귀한다. 그리고 2013년부터 다임러 상용차 부문 대표로 차분하게(?) 일하고 있다. 2018년까지 지휘봉을 휘저을 디터 제체 회장도 거쳐간 다임러그룹 내 노른자 보직이다.
베른하르트가 앞으로 다임러 CEO에 취임하게 될까?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오늘날 메르세데스-벤츠는 BMW에 비해 직원이 40% 많으면서 판매량은 20%나 떨어진다. 구조조정 전문가인 베른하르트가 할 일이 많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