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규어의 미래를 그리는 디자이너, 이안 칼럼
2016-07-08 10:16:48 글 김준혁 기자
재규어 수석 디자이너 이안 칼럼은 긴 비행 때문인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재규어와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자 혈기 넘치는 20대의 젊은 디자이너로 되돌아갔다
“예전 재규어는 시각적으로 너무 과거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전세대 XJ(X358)의 디자인만 하더라도 30년은 된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물론 이런 클래식함이 재규어의 장점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재규어가 지향하는 부분, 설립자 윌리엄 라이언스가 원하던 모습은 아니에요. 개인적으로도 재규어는 21세기에 어울리는 차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현재의 모습으로 바꿨고, 나아가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으로 이끌었습니다.”
재규어의 디자인, 특히 XJ가 파격적으로 변한 이유에 대한 이안 칼럼의 대답이었다. 그렇다면 예전의 재규어는 어땠을까? 또한 창업자 라이언스가 원했던 모습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전 재규어들은 단순히 클래식하기만 한 차였을까? “1968년 나온 XJ 시리즈 I을 예로 들어보죠. 흔히 트윈서클 헤드램프를 쓴 클래식한 디자인의 차로 알고 있지만, 당시에는 가장 현대적인 디자인이었어요. 60년대말 그런 디자인을 한 차는 한 대도 없었죠. 최신 XJ만큼이나 혁신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차였습니다.”
칼럼의 말에 따르면 재규어는 항상 트렌드에 부응하는 디자인을 채택해왔다. XJ 시리즈 I의 트윈서클 헤드램프도 당시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디자인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재규어는 보수적이고 클래식한 브랜드라고 생각하지만, 반세기 전에는 최신 트렌드에 기초한 첨단 자동차였던 것이다.
1999년 칼럼이 수석 디자이너로 입사한 뒤에 재규어는 모든 것이 바뀌었다. 보닛 끝에 매달려 있던 입체적인 엠블럼이 뒤쪽으로 옮겨간 것은 그 시작에 불과하다. 재규어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보수적인 디자인은 자취를 감췄고, 그 어떤 차에 지지 않을 만큼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으로 변신했다. 재규어팬들도 이런 갑작스러운 변화에 놀랐고, 일부는 저항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소비자뿐만이 아니다. 재규어 경영진조차도 힘들어했다.
“변화에 대한 진통은 XF의 디자인 초기 단계부터 있었어요. 하지만 이젠 몇년 전 일이 되었네요. 변화가 왜 필요한지 끊임없이 설득했습니다. 인내의 연속이었죠. 다행이 새로운 시도가 받아들여졌고, 지금은 많은 사람이 저를 믿고 따라오고 있습니다.”
칼럼이 일궈낸 재규어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모델이 XJ다. 2009년 XJ(X351)가 처음 나왔을 때의 놀라움이 지금도 생생하다. 당연한 일이다. 이전 XJ와 최신모델 사이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긴 시간차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칼럼은 8세대 XJ에 대해 “1960년대 나온 차 중 가장 럭셔리하고 흥미로우면서 혁신적인 차였던 XJ 시리즈 I의 본질을 끄집어내 모두가 공유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말한다.
새로워진 XJ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은 인컨트롤 터치 프로를 장착했다. 인텔 쿼드코어 프로세서와 60GB SSD를 바탕으로 8인치 터치스크린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재규어의 혁신작업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뒷좌석에는 새로운 10.2인치 디스플레이가 추가되어 XJ의 가치를 높였다.
XJ의 새로운 디자인을 간단하게 정리해줄 것을 칼럼에게 부탁했다.
“트윈서클 헤드램프가 오랫동안 XJ를 상징해왔습니다. 새 XJ에서는 ‘더블 J 블레이드’라는 이름의 LED 주간주행등으로 과거의 모습을 남겨두었어요. 헤드램프 외에 커다란 프론트그릴이 XJ를 포함한 재규어 전체를 상징하는 새로운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신모델은 예전의 XJ와 닮은 데가 별로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두 1968년 나온 오리지널 모델에서 영감을 얻은 것입니다.”
신형 XJ의 디자인이 오리지널 XJ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니? 그의 설명을 더 들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저는 음악, 건축, 사진 등 모든 것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을 시작합니다.”
너무 뻔한 이야기다. 그러나 이어지는 설명은 뻔하지 않았다.
“영감이 되는 소재가 왜 좋은지 생각하는 데서 디자인이 시작됩니다. 그 다음에는 나만의 방식으로 영감을 포착해 디자인을 구체화시켜나가죠. 영감이 되는 소재를 그대로 베끼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과거의 XJ로부터 현재의 XJ가 디자인됐다는 칼럼의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브랜드의 상징과도 같은 올드 모델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해낸 결과물이 오늘날의 XJ이고, 재규어인 것이다.
칼럼이 수석 디자이너로 입사한 뒤 재규어의 디자인은 급변했고, 완전히 새로운 재규어만의 아이덴티티가 완성됐다. 한꺼번에 많은 것을 보여줘 앞으로 보여줄게 많아 보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2세대로 진화한 XF는 안정적인 변화를 택했다.
“저에게 주어진 최우선 과제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재규어만의 패밀리룩을 완성하는 일이었습니다. 즉 아이덴티티를 만드는 것이었죠. 그 결과 XE부터 F?페이스까지 재규어 라인업의 패밀리룩이 완성됐습니다. 따라서 2세대 XF는 극적인 변화가 필요치 않았어요. 재규어의 새 아이덴티티가 이미 적용됐기 때문이죠. 대신 넓은 실내공간과 경량화, 공기저항 개선 등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나올 XJ는 어떤 모습일까?
“이미 새로운 XJ의 디자인 작업이 시작됐습니다. 이 차는 재규어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선두주자가 될 것입니다.”
이 말은 차세대 XJ가 또 한번 커다란 변화를 거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지만, 칼럼은 말을 아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 할 것 같네요.”
미래의 재규어는 어떻게 변할까? 혁신적이고 멋진 디자인을 위해 이안 칼럼에게 영감을 주는 소재가 더욱 많아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