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플레이어를 위협하는 신흥 플레이어
2016-09-06 07:58:09 글 리차드 정(YFAI 디자인 총괄 부사장)
필자는 세계 각국의 주요 자동차회사들과 만나면서 최신 상품과 기술을 소개하고 개발 프로젝트에 대해 협업 및 의논을 한다. 최근에는 신흥 플레이어, 즉 기존의 자동차회사가 아닌 새롭게 자동차산업에 뛰어드는 회사들과 접촉을 하고 있다. 필자가 흥미롭게 느낀 것은 바로 이 신흥 플레이어들이 생각하는 자동차 개발 개념이다. 사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기존 자동차회사들의 개발 방식은 거의 완벽하다. 모든 신기술의 개발과 검증이 엄격하게 이루어진다.
보편적으로 자동차 1대를 개발하려면 약 1조원의 개발비가 들어간다. 그리고 약 4년의 개발 기간이 소요된다. 독일의 고급 브랜드는 5년 또는 6년까지 걸리기도 한다.
긴 개발 기간이 필요한 이유는 기술에 대한 많은 검증을 거치기 때문이다. 테스트의 종류는 다양하다. 고열과 저온, 장시간 자외선 테스트, 습도 테스트, 염분 테스트, 화염 테스트, 충돌 테스트, 그리고 반복사용을 통한 내구성 테스트가 이뤄진다.
테스트의 필요성은 오랜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이다. 소비자의 불만이 없어지는 한도까지 테스트를 해야만 제품을 판매할 수 있다. 검증을 통과하지 못한 상품을 내놓을 경우 리콜이 발생한다. 자동차회사들은 막대한 돈을 들여 보상과 수리를 해준 경험이 있어 거기에 따른 위험성을 미리 피하려 한다. 이런 이유로 검증된 기술이 아니면 섣불리 적용하는 모험수를 두지 않는다.
최근 필자가 신흥 플레이어들을 만나면서 느낀 것은 매우 다르고 신선하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봤을 때는 순진하다고도 할 수 있다. 이들이 가진 개발 개념은 마치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 방식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그들은 신기술일수록 어필을 해야 하고, 완벽하게 검증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검증이 70~80%만 되면 판매해도 된다고 여긴다. 왜냐하면 이후에 업그레이드 버전을 내놓으면 되기 때문이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판매하는 것처럼 말이다. 일단 하드웨어를 팔고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를 해 문제점을 해결해나가는 방식이다.
신흥 플레이어의 방식에 따르면 자동차 성능이 부족할 경우, 컴퓨터의 그래픽카드나 메모리를 업그레이드 하는 것처럼 하드웨어 업그레이드도 가능하다.
기존 자동차 구매 방식과 사후관리에 숙달된 소비자들은 전혀 만족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신흥 플레이어들은 기존 방식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컴퓨터 시대에 태어나서 스마트폰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밀레니엄 세대에게는 기존 방식의 마케팅은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내구성은 탄탄하지만 신기술이 적용되지 않은 상품은 오늘날의 젊은 소비자들에게는 어필할 수 없다.
만일 이러한 추세가 계속 이어진다면 기존 방식만 고집하는 자동차회사들은 불리해질 것이 뻔하다. 시대적 변화에 빠르게 대응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반면, 신흥 플레이어들의 방식은 개발비를 많이 들이지 않고도 새로운 기술에 쉽게 대응할 수 있다. 그리고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1~2년마다 새로운 상품을 내놓을 수 있다. 기존의 자동차회사들이 이런 방식에 대응하려면 혁신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우선 빠르게 변하고 있는 소비자의 동향에 맞추어 자동차 개발방식의 기본개념부터 바꿔야 한다. 그리고 소규모의 탄력적인 개발팀을 구축해서 변화의 가능성을 타진해봐야 한다.
최근 FCA 회장인 세르지오 마르치오네가 구글과 파격적인 계약을 했다. 크라이슬러 미니밴에 구글의 기술을 탑재하기로 한 것이다. 이 모습을 보면 기존 자동차회사가 눈앞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즉, 구글과 경쟁을 하는 자율주행차를 개발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길 수 없으면 같이 가는 것이 낫다”는 미국 속담이 떠오른다. 어차피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면 다가오는 미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실속 있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환경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면 기존의 자동차업체들이 지금이라도 혁신적인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