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디자이너, 변해야 산다!
2016-09-13 13:00:00 글 리차드 정 (YFAI 디자인 총괄 부사장)
자동차 디자인에서 기술적인 분야가 확장된 만큼 좌우 두뇌가 균형 잡힌 인재가 필요하다
미국 캘리포니아 아트센터를 졸업한 필자는 30년 전인 1987년 포드자동차에 입사했다. 한국에서 부모님을 따라 이민 간 1.5세대였기에 열정적으로 업무에 임했다. 운이 따랐는지 최연소 시니어 디자이너로 포드 소형차 스튜디오 책임자 자리에 올랐다. 그룹 전체의 감성 품질을 책임지기도 했다. 이탈리아 카로체리아 기아와 일본 마쓰다로 파견을 나가 유럽과 아시아 디자인에 대해서도 눈뜰 수 있었다. 2000년 부품업체인 존슨컨트롤스로 이직해 지금껏 현역으로 뛰면서 많은 디자이너들을 만나고 채용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디자이너의 자질은 별 것 없었다. 그림을 잘 그리고 아이디어가 풍부하면 됐다. 그런데 근본이 예술가이다 보니 우뇌가 발달한 반면 좌뇌는 약한 사람이 많았다. 창의력은 풍부하지만 경영이나 전략, 금전관계 같은 비즈니스 측면은 꽝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별의별 사람을 다 겪었다. 예를 들어 회사 출장경비 보고서 ‘엔터테인먼트’(비즈니스를 위한 접대 경비를 뜻한다) 항목에 친구들과 오페라 극장에 다녀왔다는 영수증을 자랑스럽게 붙여놓는 등 상상할 수 없는 행태를 보이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자동차가 좌측통행을 하는 영국에서 반대방향으로 달리다가 사고를 내서 구금된 직원을 빼낸 적도 있었다. 어떤 디자이너는 과속운전 중 경찰이 단속하려 하자 회사로 숨어들었다. 그를 검거하려고 비상출동한 경찰들 때문에 회사가 뒤집어진 적도 있었다. 관리자로서 직원들의 엉뚱한 행동을 뒤처리하고 경영진에게 해명하느라 고생했지만 업무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모습을 보면서 위안을 삼았다.
시대가 변하면서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디자이너의 자질도 달라졌다. 자동차 디자인에서 기술적인 분야가 확장된 만큼 좌우 두뇌가 균형 잡힌 인재가 필요하다. 다른 부서와 이견이 생겼을 때 서로 윈-윈하는 절충안을 찾을 수 있는 전략적 마인드도 가져야 한다.
다른 부서와 이견을 조율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사실 많은 회사들이 ‘사람이 먼저’라는 구호를 외치지만 임원들이 신입사원 채용을 위해 학교까지 가서 인터뷰하는 경우는 한번도 보지 못했다. 필자는 부서 책임자들과 함께 신입사원은 물론이고 인턴까지 직접 만나본다. 28년 이상 매니징을 하면서 좋은 인재를 알아보는 눈을 갖게 됐다. 이를 바탕으로 가능성 있는 인재를 찾아야만 손발을 맞춰가며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다. 인재를 알아보는 비결은 간단하다. 인터뷰 대상이 30년 뒤에도 회사에 유용한 사람일지 생각하면 된다.
최근 들어 원하는 디자이너의 타입이 또 다시 달라졌다. 자율주행과 사물인터넷(iOT) 그리고 공유경제가 널리 보급되는 시대를 맞이해 융합적 비전을 이해하는 디자이너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새 시대가 요구하는 기술과 지식을 기초로, 협상도 잘하고 전략적인 마인드를 갖춘 그림쟁이라고 할까? 이런 디자이너를 찾는 일은 IT업계에서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을 찾는 일만큼이나 힘들다.
여러가지 이유로 기회가 될 때마다 국내외 대학에서 강의를 한다. 그때마다 느끼지만 현재 교육 시스템은 개선할 부분이 많다. 교수들도 업계의 발전된 기술과 새로운 경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다행인 점은 극소수지만 될성 싶은 자질을 갖춘 학생들이 보인다. 힘이 닿는 데까지 그들에게 기회를 만들어주려고 노력한다.
포드 디자이너들이 제작한 헤비메탈 콘셉트 눈사람
앞으로 5년 안에 자율주행차가 시판될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드론과 1인 전기차 등 새로운 교통수단이 등장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창의적이고 혁명적인 디자인을 그려낼 디자이너가 절실하다.
자동차업계는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덜 된 것 같다. 과거 방식에 젖은 사람들이 디자인 부서는 물론이고 기획·개발·생산·마케팅 등 전체 분야를 이끈다. 새로이 자동차산업에 발을 담근 테슬라·구글·애플 같은 IT기업들과 비교할 때 자동차업계는 멸종이 임박한 공룡처럼 위태롭기만 하다. 자동차산업이 살길은 하나다. 변화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