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터 제체, 벤츠를 움직이는 큰 손
2016-09-20 08:00:00 글 이지수 기자
1953년 터키에서 태어난 디터 제체 회장은 세살 때 아버지를 따라 독일로 이주하고 그곳에서 성장했다. 칼스루에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1976년 다임러 벤츠 연구개발센터 입사한 그는 일과 학업을 병행해 1982년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 후 전자장치·상품개발·마케팅·세일즈 등 핵심부서를 돌면서 풍부한 실무경험을 쌓았다.
그가 다임러그룹의 회장에 오른 배경을 알려면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회장을 맡고 있던 위르겐 슈렘프는 전세계적으로 불어닥친 자동차산업의 인수합병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미국 크라이슬러를 395억달러(47조원)에 사들이는 모험을 했다. 둘의 합병은 유럽과 미국의 악수, 고급차와 대중차 메이커의 결합으로 화제를 모았지만 시너지 효과를 거두지 못했고 주가도 계속 떨어졌다.
2000년 11월 다임러 이사회는 임원이던 디터 제체를 크라이슬러 책임자로 임명했다. 그는 메르세데스-벤츠의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다양한 신차를 개발했다. 10억달러(1조1,900억원)에 이르던 적자는 2년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1997년 앨라배마 공장 건설 계획을 진두지휘하며 능력을 입증한 바 있기에 그가 크라이슬러 수장으로 간 일은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슈렘프 회장은 2005년을 끝으로 갑작스레 은퇴를 선언한다. 2008년까지 임기를 보장받은 그의 퇴임은 다임러크라이슬러그룹에 대한 미국 SEC의 대대적인 조사가 원인 중 하나였다고 알려졌다. 이로 인해 2006년 1월 1일, 디터 제체가 다임러 크라이슬러의 총괄회장에 오르게 된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다임러크라이슬러의 주가가 하루만에 10% 가까이 오를 정도로 그에 대한 신뢰도가 높았다. 2006년 회장에 취임한 그는 적자를 해소한다는 명목으로 생산성이 떨어지는 공장을 정리하고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2만6,000명에 이르는 직원을 해고해 원성을 사기도 한다.
소비자를 위한 ‘직원 할인가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등 홍보와 세일즈에도 직접 뛰어들었다. 코믹 만화 캐릭터인 ‘닥터 Z’로 변장해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TV 광고와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아이들을 모아 놓고 지프에 대해 설명을 하는가 하면, 미니밴 광고에 나와 자신에게 날아든 축구공을 헤딩으로 받아넘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영락없는 이웃집 아저씨나 할아버지 같은 모습이었다. ‘Z박사에게 물어보세요’라는 광고 시리즈는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된다.
2016 연례 미팅에서 연설 중인 디터 제체. 2019년 말까지 다임러그룹 회장직을 이어갈 예정이다
2007년에는 크라이슬러를 74억5,000만달러(8조6,550만원)에 매각해 회사를 다시 다임러그룹으로 바꾸고 대표 브랜드인 메르세데스-벤츠의 경쟁력 강화에 힘썼다. 그 결과 아버지의 차로 받아들여졌던 메르세데스-벤츠를 아들들에게도 사랑받는 젊은 이미지로 변신시키는데 성공했다.
제체 회장은 모터쇼나 신차 발표회 같은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석해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 경영에 관련해서는 냉철하되 소비자나 언론매체에는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간다.
디터 제체 회장의 임기는 2013년 12월말까지였으나 그해 2월 이사회에서 임기 연장을 결정했다. 두 번 더 신임을 받아 2019년 말까지 다임러그룹의 회장직을 맡을 예정이다. 그가 앞으로 어떤 과감한 모습으로 우리를 놀라게 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