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의 미래, 디자인도 함께 바뀌어야
2016-10-16 08:00:00 글 리차드 정 (ADIENT 신상품·디자인 총괄 부사장)
요즘 국내 전기차 시장이 복작복작하다. BMW i3, 닛산 리프, 르노삼성 SM3(사실상 르노차다)에 현대 아이오닉 EV, 쉐보레 볼트 등이 추가됐기 때문이다. 테슬라도 곧 데뷔한다. 공급이 늘면 수요 증가는 자명하기 때문에 전기차에 대한 관심이 날로 커진다. 자동차업계는 20년 안에 연간 새차 판매량의 절반은 전기차가 차지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많은 사람이 전기차가 비교적 신기술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전기차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훨씬 먼저 나왔다. 벤츠가 단기통 내연기관을 얹은 최초의 자동차를 내놓은 해가 1886년이다. 이보다 50년이나 빠른 1837년 영국의 데이비슨이 처음으로 충전식 배터리 전기차를 선보였다.
이후에도 전기차는 많았다. 심지어 발명왕 에디슨이나 포르쉐도 전기차를 만들었지만 배터리 기술이 취약하고 가격도 비싸 많이 팔리지 않았다. 반면에 내연기관 자동차는 성능이 차츰 나아졌다. 석유 정제기술과 더불어 주유소가 많이 생기면서 자동차 판매가 대폭 늘었다. 게다가 미국 포드 모델 T가 연간 100만대씩 팔리는 대히트를 기록하며 내연기관 자동차의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
전기차의 자리는 더욱 좁아졌다. 이처럼 전기차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이유는 내연기관 자동차에 비해 성능이 뒤쳐졌기 때문이지만 충전이 불편한 게 가장 큰 원인이었다.
GM EV1에 얽힌 음모론이 궁금하다면 다큐멘터리 <누가 전기차를 죽였나?>를 찾아볼 것
1990년대 중반 미국 GM이 오랜 개발과정을 거처 기술적으로 진보한 전기차 EV1을 내놓았다. 1,000여대를 판매하고 단종된 EV1과 관련해 대형 석유회사들의 음모론을 들먹이는 사람들도 있지만, 주된 이유는 상품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어떨까? 최근 배터리 성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충전이 빠르고 효율도 높아졌다. 손에 들고 있는 휴대폰만 봐도 리튬이온 배터리의 발전 속도를 실감할 수 있다. 성능을 더 높이고 대량생산을 통해 단가를 낮출 수 있다면 배터리는 더이상 전기차 보급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충전소가 문제다. 주유소만큼 충전소를 늘리려면 시간과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에 각국에서는 해법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디자이너들도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 전기차는 내연기관 자동차와 다르다. 전기모터나 관련부품의 개수도 적고 크기도 작아 엔진룸을 콤팩트하게 설계할 수 있다. 따라서 새로운 골격의 스타일을 구현할 수 있다. 엔진룸이 줄어든 만큼 그린하우스(유리창으로 둘러싸인 승차공간을 뜻하는 디자인 용어)가 커지는데, 시각적으로 차체비율이 나빠지는 일을 막으려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전기차 시대가 오면 자동차 디자인도 바뀌어야 한다
그린하우스가 늘어나면 실내공간도 자연스레 커진다. 자율주행기술이 완벽해지면 스티어링 휠이나 변속 레버, 계기판 등도 작아진다. 프론트 그릴은 장식용이 되고 배기 파이프도 필요 없다. 내연기관 자동차와 개념이 다른 스타일링이 절실하다.
최근 포르쉐는 앞으로 전기 스포츠카에 집중하겠다고 발표했다. 역동적인 주행을 자랑하는 스포츠카의 대명사 포르쉐가 이런 장기 플랜을 세울지 누가 예측했겠는가. 세상이 급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