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젤 게이트 치명타, 폭스바겐 골프 흥망성쇠
2016-10-18 08:00:00 글 김종우 기자
어릴 적 자동차 전문지를 보며 드림카의 꿈을 키울 때가 있었다. 그때는 지금 나이가 되면 말이나 황소 못해도 삼각별 엠블럼이 달린, 뚜껑이 훌러덩 열리는 폼나는 차를 타고 다닐 줄 알았다. 어느 정도 철이 든 고등학교 시절부터 최근까지, 기자의 자동차 구매목록에는 항상 폭스바겐 골프가 올려져 있었다.
C세그먼트 해치백의 교과서라 불리는 이 차는 전세계에 3,000만대 이상 팔린 스테디셀러다. 우리나라에서는 2005년 폭스바겐이 직접 진출한 이후 인기가 올라갔으니, 골프의 판매곡선은 국내 수입차 시장의 상승세와 궤를 같이 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수입차는 돈 많은 사람이나 연예인 등이 타는 사치품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주로 팔리는 차도 고급 세단이나 값비싼 스포츠 모델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남들 다 타는 ‘현기차’ 말고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외제차에 대한 욕구가 증가했다. 70%에 육박하는 점유율을 믿고 거만하게 구는 국내 메이커의 안일한 태도도 외제차 구입을 부채질했다. 돈도 많지 않고, 합리성을 최우선으로 따지는 새로운 구매층에게 골프는 도전해볼 만한 차였다.
효율적인 디젤 엔진으로 연료비가 적게 들고, 시원하게 열리는 해치도어에 뒷좌석을 접을 수 있는 있는 넉넉한 공간, 콤팩트한 차체로 인한 날렵한 움직임과 즉각적인 스티어링. 마지막으로 감당할 만한 가격까지. 새로운 고객층이 원하는 조건을 골프는 모두 갖췄다.
골프는 그렇게 내 생애 첫 외제차라는 이미지와 함께 국내 수입차 시장 확대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최근 콤팩트 SUV 인기에 밀려 잠시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항상 수입차 판매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며 식을 줄 모르는 인기를 자랑했다.
힘 좋고 연비 높은 엔진으로 각광 받던 TDI가 하루 아침에 오염의 주범으로 전락했다
그런데, 현재의 상황은 말 안해도 알 것이다. ‘디젤 게이트’로 알려진 배기가스 조작으로 폭스바겐그룹은 커다란 어려움에 빠졌다(글로벌 시장에서 판매는 여전히 잘되지만 후속조치로 나갈 돈을 생각하면…).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폭스바겐은 물론이고 같은 그룹인 아우디·벤틀리 모델 대부분이 판매금지 처분을 받았다. 배기가스 저감 장치를 조작한 데 이어 인증 관련 서류를 위조해 제출했다는 게 그 이유다.
이 때문에 골프뿐만 아니라 잘 나가던 SUV인 티구안도 판매목록에서 사라져버렸다. 폭스바겐에 대한 족쇄는 수입차 시장 전체가 위축되는 현상을 불러왔다. 디젤 엔진에 대한 신뢰가 깨지면서 수입차의 70%를 차지하던 디젤차의 판매가 감소했다. 관련 딜러와 영업사원, 중고차값 하락으로 기존 폭스바겐그룹 자동차 소유주들에게까지 그 여파가 미치고 있다. 수입차 시장을 일으킨 주역이 어느날 갑자기 반역자가 된 모양새다.
원칙적으로 골프는 아무런 죄가 없다. 폭스바겐그룹의 디젤 엔진이 문제다. 하지만 때 늦은 변명이요 엎질러진 물이다. 골프의 위키피디아에는 ‘디젤 게이트’라는 불명예스러운 꼬리표가 붙게 생겼다. 폭스바겐그룹은 우리나라에서도 미국에서처럼 잘못한 부분은 깔끔하게 인정하고 확실한 후속조치를 해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