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의 위기는 자율주행의 위기?
2016-10-22 08:00:00 글 리차드 정(ADIENT 신상품·디자인 총괄 부사장)
최초의 자동차처럼 인류의 삶을 뒤흔들어 놓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자율주행자동차 개발에 급제동이 걸렸다. 최근 미국에서 테슬라 모델S가 일으킨 교통사고 때문이다. 사고는 지난 5월 7일 플로리다 윌리스턴 근처 27번 고속도로의 한 교차로에서 일어났다. 트레일러가 비보호 좌회전을 하던 중 맞은편에서 모델S가 빠르게 돌진해 트레일러 적재함 아래를 뚫고 지나가버렸다. 이로 인해 운전자는 사망했다. 당시 그는 오토파일럿 기능을 이용해서 고속도로를 주행하고 있었다.
참고로 테슬라가 세계 최초로 보급하고 있다고 자랑하는 자동주행 시스템인 오토파일럿은 차로 유지장치와 액티브 크루즈 컨트롤 등을 결합한 2,500달러(약 287만원)짜리 옵션이다. 구글 등에서 개발하고 있는 100% 자율주행자동차와 비교해 중간단계의 기술로 생각하면 된다. 또 메르세데스-벤츠, 볼보 등 주요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들도 테슬라보다 앞선 기능을 양산차에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테슬라는 전기차처럼 공격적인 마케팅·세일즈 전략으로 자신들이 자율주행차 관련 선두주자라는 이미지를 굳히고 있었다.
실상은 달랐다. 이번 사고는 오토파일럿 시스템의 카메라와 거리측정 레이더의 정보가 일치하지 않은 기술적 오류 탓에 발생했다. 테슬라 역시 흰색 트레일러의 표면이 햇빛에 반사돼 전방 카메라가 감지하지 못했다고 공식적으로 해명했다.
원래 기술적으로는 시각적인 영상 정보를 활용하는 카메라와 전파로 거리를 측정하는 레이더 외에 레이저 광선으로 거리를 측정하는 라이더 시스템을 맞물리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하지만 서둘러 시장에 이슈를 던져야 했던 테슬라였기에 카메라와 레이더만 조합한 상태에서 일단은 ‘고’한 것은 아닐까? 남보다 먼저 신제품을 출시하고 업그레이드해나가는 것이 IT 업계의 관행이기도 하다.
모델S에 달린 오토파일럿은 완전 자율주행의 전 단계 기술이라고 보면 된다
실제로 테슬라는 2014년 10월 오토파일럿 시스템을 출시하면서 이름과 달리 운전보조장치라고 소개했다. 그래서 이 기능을 사용하더라도 위험한 상황이라고 판단되면 운전자가 직접 차를 조종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문제는 운전자들이 ‘베타 버전이며 이 기능을 사용할 때 모든 책임은 운전자에 있다’고 명기된 오토파일럿 시스템을 남용한다는 점이다. 일부 언론매체에 따르면 이번 사고의 사망자는 휴대용 DVD 플레이어로 <해리포터> 영화를 보고 있었다고 한다. 모델S는 운전자가 스티어링 휠을 계속 잡지 않아도 경고가 울리지 않기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아무튼 모델S의 사망사고는 갖가지 역풍을 일으켰다. 테슬라는 5월 7일 발생한 사고를 16일에야 미국 고속도로교통안전국(NHTSA)에 보고하고, 자체조사를 시작했는데 이틀 뒤에 모델3의 생산자금 마련과 세금 납부 등을 이유로 20억달러(약 2조3,000억원) 규모의 주식을 매각했다. 그런데 사망사고는 6월 30일에야 공표됐다. 만약 사전에 알려졌다면 테슬라 주가는 떨어졌을 것(실제로 그랬다)이기에 상대적으로 비싼 값에 주식을 팔아치운 것이다.
업계에서는 12년 연속 적자에다가 모델3의 생산을 위해 많은 실탄(돈)이 필요했던 테슬라의 CEO 엘론 머스크가 일부러 공개를 늦췄다고 본다. 이와 관련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조사에 착수했다. 또 최근 머스크는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태양광업체 솔라시티의 인수 계획과 관련해서도 구설에 휘말렸다.
이번 사고로 치명적인 오류가 증명된 테슬라의 오토파일럿 시스템과 관련해 독일연방자동차위원회에서는 사건 발표 직후 사용을 금지했다. 또 미국의 권위지 <컨슈머리포트>도 비슷한 입장을 내놓았다. 결과적으로 테슬라는 자율주행자동차 관련업계 전체에 큰 파장을 던졌다. 만약 이번 사고와 관련해 테슬라가 법적인 책임을 지게 되고 관련법규가 강화된다면 자율주행차 개발에 족쇄가 채워질 것이다. 선두주자도 아닌 테슬라로 인해 업계 전체가 진창에 빠지게 된다면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저런 비난을 받을 수도 있는 테슬라지만 모두가 주저하고 있을 때 도전한 점은 박수 받아야 한다. 역사적으로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보급되는 과정에서 어김없이 문제가 발생했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나은 기술을 선보이면서 발전을 거듭해왔기 때문이다. 다만, 자동차는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기 때문에 신기술 적용에 한층 신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