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차, 역사에 남는 클래식카가 될 수 있을까?
2016-11-12 08:00:00 글 리차드 정(ADIENT 신상품·디자인 총괄 부사장)
북미에서는 히트 친 기아 쏘울. 훗날 클래식카에 들 자격이 충분하다
클래식카는 역사적으로 중요하거나 아름다운 디자인 또는 역동적인 퍼포먼스를 지닌 자동차를 말한다. 이런 차는 판매 당시에도 사랑을 받았지만 세월이 흐른 뒤에 더욱 귀한 존재로 대접받는다. 유럽산 클래식카가 성능과 차체 기술 그리고 아름다운 디자인을 강조한다면, 미국 클래식카는 강력한 엔진을 바탕으로 개성이 강한 디자인을 뽐낸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유일하나 클래식카라고 내세울 만한 차가 거의 없다.
필자 나름대로 디자인이 아름다운 클래식카를 꼽아본다면 벤츠 500K(1934), 벤츠 300SL 걸윙도어(1955), 재규어 XK120(1948), 포르쉐 356(1954), 쉐보레 콜벳(1958), 재규어 E-타입(1961), 포르쉐 911(1963), 시트로엥 DS(1962), 란치아 스트라토스(1973), 페라리 GTO(1974 또는 1984) 그리고 애스턴마틴 DB4(1960) 등이다.
1960년대 미국산 머슬카 중에서 클래식에 속하는 차는 지금은 없어진 브랜드인 폰티액 GTO(1969)와 트랜스앰(1978)을 비롯해 닷지 차저(1969), 포드 머스탱(1969), 쉐보레 카마로 Z28(1971), 뷰익 리비에라(1973)를 꼽을 수 있다.
일본차도 몇대를 뽑는다면 마쯔다 RX-7(1978), 토요타 2000GT(1967), 닛산 240Z(1970), 혼다 시빅(1975), 토요타 셀리카(1978) 정도다.
석유파동이 일어난 1970년대를 거치면서 자동차 시장은 연비에 유리한 소형화 및 품질 경쟁의 장이 됐다. 많은 자동차회사들이 경영난으로 인수합병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좋은 자동차를 만드는 일보다 이익을 남기고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택했다. 따라서 클래식카의 조건, 즉 감성적인 디자인을 갖춘 차를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1955년형 벤츠 300SL 걸윙도어
지금도 훗날 클래식카의 조건을 맞출 수 있는 차들은 나오고 있다. 포르쉐 911이 대표다. 포드 머스탱과 쉐보레 콜벳은 한동안 정체불명의 시기를 보내다가 한국 출신 디자이너들의 손을 거쳐 다시 멋진 디자인을 갖게 됐다. 포드 머스탱은 천세원 디자이너가 인테리어 디자인을 지휘했고 쉐보레 콜벳은 이화섭 디자이너가 외관을 책임졌다(신형 카마로도 그의 작품이다). 아름다운 디자인과 역동적인 퍼포먼스를 자랑하는 BMW 4시리즈는 강원규 디자이너의 작품이다. 토요타 FJ 크루저도 훗날 클래식카에 포함될 자질을 갖고 있는데, 김진원 디자이너가 지휘했다.
그럼 한국 자동차는 어떤가? 역사적 중요성을 따지면 현대 포니가 1순위다. 현대 스쿠프, 쌍용 코란도와 무쏘도 그러하지만 디자인 측면으로 봤을 때 수준 미달이라고 생각한다.
괜찮은 차도 있다. 국내에서 인기가 별로 없는(북미에서는 히트다) 기아 쏘울이다. 스타일이 매우 정직한 차로 훗날 클래식카에 들 자격이 있다. 소형차이지만 실내가 넓고 실용적이고, 개성 있는 외관과 인테리어는 오너에게 높은 만족감을 제공한다. 파워트레인도 스포티한 달리기가 가능한 조합이다.
자동차회사가 차를 만들어 파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다. 기왕 차를 만들려면 사람들의 기억과 역사에 남는 디자인을 갖춘 차를 생산하는 일이 보람되지 않을까.
최근 해외에서 활동하던 우수한 외국인과 한국계 디자이너들이 국내에 들어왔다. 모두 디자인 안목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클래식카의 조건도 잘 안다. 그들이 만드는 멋진 차들이 역사에 남는 클래식카 목록에 포함되기를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