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으로 바뀐 드레스덴 폭스바겐 공장
2016-11-18 08:00:00 글 민병권 기자
얼마 전 독일 드레스덴에 갈 일이 있었다. 드레스덴이라고 하면 자동차 마니아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명소가 바로 폭스바겐 공장이다. 공장은 드레스덴 중심가에서 걸어가도 될 만큼 가까이에 있다. 외벽과 안쪽 벽 상당부분을 유리로 만들어 안에서 뭘 하는지, 즉 뭘 어떻게 만들고 있는지 훤히 들여다보인다.
생산효율만 따지면 여러모로 비합리적인 이 공장은 처음부터 ‘보여주기 위해’ 고안됐다. 대중차만 만들어온 ‘국민차’ 브랜드 폭스바겐이 벤츠 S-클래스, BMW 7시리즈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고급 대형차 페이톤을 내놓으면서 꺼내든 비장의 카드였다. 당시 회장이었던 페르디난트 피에히는 페이톤을 통해 폭스바겐의 지위를 격상시키고자 했기에 아낌없는 투자를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상품이 뛰어나도 브랜드 가치에서 상대가 되지를 않으니 얼마나 정성 들여 만드는 고급차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로 했다.
밖에서 훤히 들여다보이게 해놓고 안에서는 소음과 냄새, 기름때에 찌든 라인을 가동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바닥에 단풍나무 목재를 깔고 레일을 매립해 조립할 섀시가 천천히 이동하게끔 하고 천장에 매달려 이동한 보디는 마지막 단계에 섀시와 결합됐다. 그 사이 깔끔한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우아한 수작업으로 조립을 마쳤다. 이것은 다른 공장에서 완성된 부품을 모아 최종조립만 했기에 가능했다. 가령 차체는 츠비카우 공장에서 도색까지 해서 트럭으로 운송해왔다.
아직 떠나지 못한 페이톤도 있다
알다시피 폭스바겐이 그렇게 공들였던 페이톤은 폭망했다. W12 6.0L, V10 5.0L TDI 엔진을 비롯해 내로라하는 기술을 자랑했고 가격 대비 가치에서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연간 2만대 판매를 목표로 한 차가 5,000~6,000대 나가는게 고작이었다. 판매대수만 보면 최고급차 수준이긴 했다. 판매가 저조해 미국 시장에서 철수했고 한때는 한국과 중국에서 반짝 수요가 있었지만 팔수록 손해 보는 구조는 바뀌지 않았다. 잘 팔리지 않는 차에 계속 큰돈을 들일 수도 없어서 업데이트는 작은 변화에 그쳤고 풀 체인지 한번 없이 십여년을 버텼다. 덕분에 생산 여력이 넘쳤던 드레스덴 공장은 플랫폼을 공유하는(그리고 츠비카우에서 차체를 만드는) 벤틀리 플라잉 스퍼도 함께 생산하곤 했다.
결국 페이톤은 올해 3월 18일 공식으로 단종됐다. 중국 시장에서는 후속모델로 피데온을 발표했지만 중국 현지에서 생산이 이뤄진다. 드레스덴 공장은 대체차종을 맡지 못했다. 결국 500명의 직원 중 400명은 츠비카우 공장(115km거리에 있다) 등 인근 작업장에 배치됐다.
공장은 약간의 개선작업을 거쳐 지난 4월 폭스바겐의 전기자동차 기술 전시장으로 거듭났다. 50여가지 전시물을 통해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폭스바겐 전기차, 그리고 콘셉트카들과 디지털 기술들을 만나볼 수 있고 시승도 가능하다. 폭스바겐그룹은 현재 8종의 전기차 및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를 판매하고 있고 2020년까지 20여종을 추가할 예정이다. 페이톤 후속이 전기차로 나온다는 소문도 있다.
쾌적한 전시공간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유리공장도 생산능력을 완전히 잃지는 않았다. 페이톤 생산 라인은 아직 남아 있고 일부는 견학코스로 활용한다. 폭스바겐 관계자들은 이 공장이 머지않아 다시 가동될 것이라고 말한다. 재정비를 거쳐 여러가지 차를 생산할 수 있는 조립라인을 갖출 예정이다.
한때 폭스바겐이 품었던 야심의 상징과도 같은, 그리고 그 큰 자존심에 상처를 남긴 ‘투명한’ 유리공장이 디젤 게이트 이후 전기차 전시장으로 변신했다. 그런데 그게 전부일까? 공장 중심부에 마련된 쇼룸에는 페이톤 옆으로 디젤 엔진을 탑재한 최신형 티구안이 예비 고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유럽에서는 판매 중이지만 국내 판매는 기약이 없는 그 티구안 말이다. 기분이 묘했다. 폭스바겐이 꺼내들 다음 카드는 과연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