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동차 판 돌아가는 모습을 가장 잘 표현 하는 말은 아마 ‘정신없다’가 아닌가 싶다. 변화야 예전부터 계속 있어왔지만 요즘은 변화의 폭이 넓고 속도가 매우 빠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통에 따라가기도 힘들고 방향을 정하기도 쉽지 않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헤매이기 십상이다. 변화 속에 이름이 꼭 등장하는 브랜드가 있으니 바로 포르쉐다. 스포츠카만 잘 만들면 될 텐데 이곳저곳 발을 들여놓는다.
앞길을 위해 이것저것 건드리는 시도라기보다는, 주도적으로 변화를 이끌어 가는 모양새다. 특정 분야에 집중하는 중소규모 브랜드라고 해서 무시할 수는 없다. 세상 변화는 예로부터 소수가 이끌어왔다. 한국에서도 포르쉐는 많은 변화를 보여줬고 변화를 주도한다. 변화의 물결에 흔들릴 법도 한데 확고하게 중심을 지킨다. 원칙이 확고하다고 할까. 포르쉐와 변화, 그리고 그들만의 원칙에 관해 마이클 키르쉬 포르쉐코리아 대표이사와 이야기를 나눴다.
포르쉐의 변화가 아주 극적이다. 차종 확대와 친환경 특성 강화 등 빠르게 바뀐다.
“포르쉐라는 브랜드의 변화는 유전적으로 타고났다. 레이스트랙에서 탄생했기에 계속해서 발전하고 차별화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데 주력했다. 요즘 자동차업계는 패러다임 변화가 크게 일어난다. 18세기에서 19세기로 넘어오면서 마차에서 자동차로 넘어간 때만큼 변화 폭이 크다. 예전에 그 무렵 10년 간격을 두고 미국 뉴욕 5번가를 찍은 사진을 봤다. 먼저 찍은 사진 속에서는 수많은 마차 사이에서 자동차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나중 사진에서는 자동차 사이에서 마차를 찾아야 했다. 자동차업계 전반에 전동화, 디지털화, 커넥티비티(연결성)가 화두로 떠올랐다. 포르쉐도 변화를 이끌기 위해 노력한다. 포르쉐에 변화는 위기가 아니라 기회다.”
세계 시장은 물론 한국에서도 포르쉐를 보는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과거에는 911 같은 스포츠카를 판매하는 브랜드로 인식했지만, 지금은 SUV와 대형 세단(엄밀히 말하면 세단은 아니다)을 주력으로 하는 브랜드로 본다. 스포츠카 정체성을 유지한다지만 정통 스포츠카 이미지는 상대적으로 옅어진 게 아닌가 싶다.
“포르쉐 DNA는 911이다. 박스터와 카이엔이 나왔을 때 포르쉐가 맞냐는 반응이 나왔다. 카이엔 3세대 국내 출시를 앞뒀는데 카이엔이야말로 SUV 중에서 가장 스포츠카다운 모델이다. 포르쉐는 스포츠카가 아닌 차는 만들지 않는다. 역동성을 유지하는데 타협은 없다. 카이엔도 의심할 여지 없는 스포츠카다. 파나메라도 개념은 세단이지만 역동성이라는 포르쉐의 유전적 기질이 잘 녹아들었다. 앞으로 전기차가 나오면 포르쉐답지 않다는 말이 나올지 모른다. 포르쉐는 전기차도 역동적이고 포르쉐답게 만든다.”
올해 9월까지 포르쉐 국내 판매량은 3000대가 넘었다. 웬만한 중소 대중 브랜드보다 많이 판다. 판매량이 많아지면 수익은 늘지만 스포츠카 브랜드의 핵심인 희소성은 떨어진다. 대중성과 희소성 어느 쪽을 중시해야 할지 쉽지 않은 문제다.
“큰 성과는 고객들이 인정해줬다는 뜻이다. 지난해 여러 문제를 겪으면서 전략을 바꿨는데 고객들이 잘 받아줬다. 성공의 기준은 정하기 나름인데 한국에서 포르쉐가 많이 팔리니 대중화됐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한국 시장 규모를 연간 150만대라 보면 4000대에서 5000대는 작은 숫자다. 서울 강남에서 포르쉐가 많이 보일지 모르지만 대한민국 전체로 보면 아직 희소성이 높다. 포르쉐만큼 개인화를 잘하는 브랜드는 없다. 손에 쥔 볼펜과 같은 색 차를 만들어 달라고 하면 그렇게 해준다. 한국에서 포르쉐가 인기가 많아도 여전히 차별화된 특성을 유지한다. 포르쉐도 국내에서 여건에 따라 희소성이 떨어질 수 있기에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한다. ‘항상 수요보다 한 대 적게 만든다’는 원칙을 명심하고 지키려고 한다.”
포르쉐는 국내에서 작게 시작해서 커진 브랜드 중 하나다. 이런 브랜드가 여럿 있는데 모두가 성장세를 유지하지는 못한다. 포르쉐는 커진 규모를 계속해서 유지하고 성장해 나간다.
“성장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 성장 방식도 여러 가지인데 우리는 모두가 혜택받는 성장을 추구한다. 회사와 고객, 관련된 이해 관계자 모두 성장 혜택을 누려야 한다. 프리미엄 브랜드는 고객이 늘어나면 그만큼 고객의 기대치도 커진다. 기대를 채우려면 신중하게 성장해야 한다. 대책 없이 차만 많이 팔면 단기적으로 성장할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 고객 만족도는 물론 브랜드 가치도 떨어진다. 앞으로도 지속해서 성장하리라고 믿는 이유는 고객 서비스 개선 여지가 많아서다. 포르쉐는 카레이싱 유전자가 흐른다. 신기록을 세워도 앞으로 어떻게 기록을 깰지 고민한다. 비슷한 신념으로 고객에게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한다.”
포르쉐코리아도 디젤 및 인증 문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얼마 전 독일에서 포르쉐는 디젤 모델을 팔지 않겠다고 했다. 국내에서 포르쉐는 SUV 비중이 높다. 시장은 디젤 SUV를 선호한다. 디젤 없이도 성장을 이어갈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본사에서 2주 전에 더는 디젤차를 생산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개인적으로 놀라지 않았다. 포르쉐코리아도 2년 반 정도 디젤 인증 때문에 여러 문제가 생겨서 내부적으로 변화를 줬다. 이미 본사보다 앞선 2년 전부터 한국에서 디젤차를 팔지 않기로 했다. 한국 시장은 디젤 선호도가 높다. 카이엔도 디젤 비중이 한때 60%까지 올랐다. 폭스바겐 그룹에서 엔진을 사와야 하고 인증도 문제여서 디젤을 없애는 게 맞다 보고 차근차근 준비했다. 디젤보다는 포르쉐의 강점에 주력하고자 가솔린이나 하이브리드 앞으로 나올 전기차에 집중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신형 카이엔이 조만간 선보인다. 카이엔은 포르쉐 국내 판매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지금은 경쟁차가 많이 생겨 독주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카이엔 출시를 손꼽아 기다렸다. 카이엔을 몇 달째 못 팔아서 재고가 동났다. 카이엔이 시장 개척자는 아니지만 독보적인 존재로 통한다. 경쟁차가 많다고 걱정하지 않는다. 카레이싱 정신으로 달려나갈 준비를 마쳤다. 3세대는 앞선 모델보다 좋아졌다. 사전 주문을 받는데 신청이 많다. 이미 판매를 시작한 다른 시장도 수요가 많고 만족도가 높다. 한국에서도 잘 되리라고 본다.”
파나메라 역시 틈새를 공략한 특별한 차인데 경쟁차가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최근 선보인 AMG GT 4도어 쿠페도 파나메라를 경쟁 상대로 지목했다.
“벤츠 같은 큰 회사가 우리 차를 벤치마크 했다니 영광이다. 포르쉐가 잘하고 있다는 증거라 생각하니 자부심이 생긴다. 자동차를 개발하고 만들 때 브랜드 가치와 고객을 우선하는데 포르쉐는 상반된 가치를 융합한다. 예를 들면 전통성과 혁신은 상반된 가치지만 이를 한데 모은다. 파나메라는 럭셔리 대형 세단 중에서 가장 역동적이다. BMW 7시리즈나 벤츠 S-클래스와 고객층이 아예 다르다. AMG가 그나마 시장이 겹친다. 파나메라 판매량은 한국이 세계 3위다. 독일보다 앞선다. 조그만 시장에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고객이 원하는 차를 내놓아서가 아닌가 싶다. 경쟁차가 나와도 두렵지 않다.”
전기차 발전속도가 매우 빠르다. 포르쉐도 E-모빌리티 분야에 막대한 공을 들인다. 한국은 시장 상황이나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본사의 전략을 100% 따르기는 쉽지 않다. 전략에 차이를 둘 수밖에 없다.
“포르쉐 본사는 E-모빌리티에 대한 결의가 대단하다. 패러다임 변화에 집중해서 2022년까지 60억유로(8조원)를 투자할 예정이다. 한국은 기술 수준이 높고 경제 규모도 안정적이고 커서 혁신이나 커넥티비티 관련한 요구가 크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E-모빌리티를 선도하는 시장이 되리라고 본다. 포르쉐는 규모가 작은 브랜드지만 처음으로 800V 고속충전기를 개발했다. 20분 충전하면 500km를 달릴 수 있다. 충전소나 충전기에 투자를 많이 한다. 딜러사만 아니라 외부 도로에서도 충전기를 쓸 수 있도록 계획 중이다. E-모빌리티 성패는 충전기 존재 여부가 좌우한다. 고속충전이 잘 정착한다면 E-모빌리티도 한국에서도 가능성 있다고 본다. 예측하자면 2025년에는 한국에서 팔리는 전체 신차 중 25%는 하이브리드나 순수 전기차가 되리라고 본다. 그리 먼 미래가 아니다. 그때는 한국도 E-모빌리티 선두주자가 되리라고 본다.”
희소성 중시 트렌드에 맞춰 스포츠카와 고성능 브랜드의 활동이 활발해졌다. 특히 퍼포먼스를 중시하는 마케팅 활동을 넓혀간다. BMW 드라이빙 센터, AMG 스피드웨이에 이어 재규어도 전용 트랙을 준비 중이다. 포르쉐도 스포츠카 대표 브랜드인데 이런 활동에서 빠질 수 없다.
“마케팅 예산을 보면 대부분 체험 등에 쓴다. 브랜드는 경험이 중요하다. 특히 포르쉐는 직접 운전해봐야 한다. 포르쉐가 좋다고 백번 말해봐야 소용없다. 직접 스티어링휠을 잡고 엔진 소리를 들으며 심장이 뛰어봐야 포르쉐를 운전하는 맛을 알 수 있다. 우리만의 레이스트랙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강원도 인제 서킷에 브랜드 이름을 걸고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고객이나 잠재 고객을 대상으로 교육을 한다. 서킷을 직접 소유하려면 방문객이 많아야 하고 프로그램을 활발하게 진행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차를 엄청나게 많이 팔아야 한다. 프로그램 운영 외에 여러 방법으로 시승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볼륨 모델이 있으면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현실성이나 현재 계획과 무관하게 포르쉐가 한국 시장에 팔 차를 새로 개발한다면 어떤 차종을 공략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
“사실 우리는 판매량을 크게 밀지는 않는다. 희소성이나 브랜드 가치에서 지금 포트폴리오가 효과를 잘 낸다. 현재 상태를 유지하면서 꾸준하고 신중하게 성장세를 이끌어 가려고 한다. 국내에 굴러다니는 포르쉐 수는 2만대 정도다. 꾸준하게 대수를 늘려가려고 한다. 판매량 확대보다는 개인적으로 팔고 싶은 차는 포르쉐의 역동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911 RS나 GT2, 카이맨 GT4 등 하드코어 모델이다. 포르쉐 마니아들이 원하는 차를 들여오고 싶다.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는데 인증이나 인허가 문제 등으로 못 들여오고 있다. 판매량 확대보다는 정말 포르쉐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차를 팔고 싶다.”
계속해서 발전하지만 약점은 있기 마련이다. 포르쉐도 국내에서 활동하는데 부족한 부분이 있다. 고치고 넘어가야 더 높이 올라간다.
“약점보다는 도전 과제로 보는 게 맞지 않나 싶다. 레이싱 DNA는 내일은 오늘보다 더 잘하자를 모토로 한다. 고객 소리를 어떻게 하면 더 잘 들을 있을지 계속해서 개선해야 나가야 한다. 고객 성향은 급변한다. 어떻게 하면 감을 잃지 않고 고객의 소리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도전한다. 고객 중심으로 고객에게 먼저 다가가려고 한다. 포르쉐 센터나 아울렛 등을 늘릴 계획이다. 큰 빌딩을 세워야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스튜디오나 중고차 인증센터, 팝업스토어 등을 준비 중이다.”
포르쉐는 비슷해 보여도 모델마다 성능과 개성이 다 다르다. 좋아하는 이유도 다를 수밖에 없다.
“가장 좋아하는 차는 911이다. 포르쉐 전체 라인업을 보나 911 정신을 따져보나 포르쉐 정신이 잘 녹아 있는 차는 911이다. 그래서 좋다. 현재 타는 차는 검은색 911 GTS4 타르가다. 하나하나 커스터마이징 해서 개성을 살렸다. 한국을 떠나도 좋은 주인을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변화는 거스를 수 없다. 두려워서 나아가지 않는다면 현재에 머무는 게 아니라 퇴보하고 만다. 변화를 자기 것으로 만들려면 중심이 확고히 서야 한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올바른 자세를 포르쉐가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