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온다. 성래(星來)라는 이름을 한자로 풀면 이렇게 동화 같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페라리 인증중고차 딜러 김성래의 이름은 절묘하고 정확했다. 영화배우, 스포츠 스타를 비롯한 수많은 별이 그를 찾아온다. 마니아 가슴을 붉은빛으로 물들이는 자동차 세상 스타 페라리가 매일 그에게 온다. 누군가에게는 지난밤 꿈이었고, 어떤 이에게는 먼 훗날 꿈일 페라리가 오늘도 그의 손길을 기다린다.
이름이 같은 사람을 처음 마주한다. 명함을 보고 많이 놀랐다. 어떤 의미에서는 인연이 아닌가 싶다. 요즘 들어 인연의 소중함을 새삼 되새긴다. 이 일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 인연이다. 매물과 인연, 고객과 인연. 수천 가지 경우의 수와 우연이 얽히고설켜서 페라리 한 대와 고객 한 명이 만난다. 속속들이 고객이 원하는 대로 주문제작 하는 페라리 신차 영업과는 그런 부분이 크게 다르다.
이름뿐 아니라 얼굴도 낯익은데
지난해 필로타 페라리 어라운드 더 월드 코리아(페라리 고객 대상 연례 서킷 행사)에서 고객 한 분이 큰 소리로 나를 찾았다. 페라리 책자에서 브랜드 스토리를 보던 중 도플갱어를 찾았다고 했다. 소름이 돋았다면서 보여준 사진에는 젊은 시절 엔초 페라리가 있었다. 페라리 직원으로서, 자동차 마니아로서 최고의 찬사였다. 어려서부터 처진 눈이 콤플렉스였는데 그날 이후 새삼 얼굴에 자부심이 생겼다.
인증중고차 사업부에서 거래하는 페라리는 한 해 몇 대인가?
국내 페라리 인증중고차 사업부가 출범한 지 2년이 채 되지 않았다. 역사는 짧지만 인증중고차 사업부는 빠른 추세로 성장 중이다. 지난해 거래량이 32대였고, 올해는 10월 중순 현재 48대다. 연간 성장률을 20% 정도로 설정하는데 2018년이 두 달 이상 남은 상황에서 이미 연간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페라리 인증중고차가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페라리 중고차는 보통 2~5억원대 가격을 형성한다. 고가인 만큼 고객은 신뢰도 높은 매물을 안전하고 정확하게 거래하고 싶어 한다. 페라리 인증중고차 사업부는 정식 수입모델이 아니거나 성능점검을 통과하지 못한 중고차는 매물로 등록하지 않는다. 페라리 공식 서비스센터에서 190여 가지 정밀점검을 통과한 차만 판매한다. 페라리 본사 고객관리 시스템과 연동해서 운영하기 때문에 모델 이력(최초 출고지, 주행거리, 소유권 변동 등)이 투명해서 정확하게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 엔진?변속기를 비롯한 구동계통에 대해 제공하는 구매 후 1년 무상보증도 장점이다. 페라리 신차와 비교하면 계약에서 인도까지 반년에서 2년에 이르는 대기시간 없이 2, 3일 만에 차를 넘겨받을 수 있다. 덕분에 신차를 계약하고 인도를 기다리는 동안 중고차를 사서 타는 페라리 고객도 많다.
고객은 인증중고차 사업부와 거래하기 불편한 부분도 있을 듯한데
차를 매각하는 고객 입장에서는 일반상사에 팔 경우 대금을 바로 지급받지만, 인증중고차 사업부에 차를 팔면 정식 매물로 등록한 뒤에 대금 지급이 이뤄진다. 고객이 차를 매물로 내놓고 서비스센터에 입고해서 상태점검을 통과하기까지 최소 사나흘이 걸린다. 이 과정을 마친 차만 인증중고차 자격을 얻는다. 고객 입장에서는 차를 넘기고도 대금 지급이 바로 이뤄지지 않아 불편할 수 있지만 꼼꼼한 정비와 이력 관리가 인증중고차의 존재 가치인 만큼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다. 매각 과정이 약간 번거롭지만 정확하게 가격을 책정할 수 있고 페라리 본사 시스템 고객 등급제도에 좋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많은 고객이 애용한다.
매물마다 다르겠지만 대략적인 감가 기준은?
페라리 중고차 가격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매우 다양해서 일반적인 가격 책정 기준을 제시하기는 어렵다. 대략 신차 출고 후 1년마다 10~15% 가격이 내려가고, 1년 주행거리는 5000km를 평균치로 잡는다.
이전에는 어떤 일을 했나?
BMW 딜러였다. 당시 신차를 팔았는데 전시장이 중고차 매매단지에 속했고 바로 옆에 BMW 인증중고차 매장이 있어서 중고차에 대한 이해가 깊은 편이었다. 신차가 출고한 후 인증중고차로 입고하고 재판매하는 선순환 구조가 흥미로웠다. 자동차 가치를 재창출하는 일이 매력적이라고 판단해 인증중고차 시장에 뛰어들었다. 자동차 마니아여서 슈퍼카를 직접 다루는 일에 막연한 동경을 가지기도 했다. 당장 손에 쥘 수입만 생각했다면 절대 페라리 인증중고차 사업부에 지원하지 못했다.
신차와 중고차, 고급차와 슈퍼카 판매는 차이가 꽤 클듯한데
이전에 몸담았던 곳과는 완전히 다른 시장이었다. BMW 고객 가운데 페라리로 연결할 수 있는 고객은 많아야 5명 정도였다. 인증중고차 사업부 출범 초기에는 회사도 기반이 없었다. 안정기에 접어들기까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했다. 기반을 다지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필요한지 장담할 수 없어서 불안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모험이었다. 새로운 시장에서 고객층을 확보하기 위해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고군분투했다. 이미 밝힌 판매량을 보면 알겠지만 순조롭게 성장 중이다.
주로 어떤 사람이 페라리를 사나?
스포츠카 브랜드여서 성향이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고객이 유독 많다. 연령대는 40대 비중이 가장 크다. 최근 30대
고객도 많이 늘었고 20대도 증가세다. 아무래도 직장인보다는 개인사업가, 여성보다는 남성이 많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가 타던 차가 매물로 들어오는 경우도 흔하다.
특히 기억에 남는 고객은?
아무래도 첫 고객이 마음에 남는다. 국내 거주하는 20대 초반 싱가포르 청년이었다. 싱가포르와 중국에서 활동하는 포뮬러 레이서인데 막연히 한국이 좋다는 이유로 1년 중 대부분을 한국에서 지냈다. 16세에 카트레이싱부터 차근차근 밟아 올라간 못 말리는 자동차 마니아다. 나이 어린 외국인이 페라리 중에서도 고가인 F12 베를리네타를 계약해서 여러모로 놀랐다. 내게 싱가포르 청년은 처음 페라리를 산 고객이고, 청년에게 나는 생애 첫 페라리를 넘겨준 딜러다. 덕분에 지금까지도 친한 형과 동생 사이로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종종 자동차 여행도 함께한다.
고객에게 들었던 잊지 못할 한 마디는?
“눈빛에서 남다른 진정성을 보았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F12 베를리네타와 FF를 두고 수개월 동안 고민하던 고객이 해준 말이다. FF가 지닌 매력은 분명했지만 페라리 모델 가운데 성격이 새로운 차라 크게 망설이는 듯했다. 오랜 기간 꾸준히 소통하면서 매물에 대해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눴다. 결국 고객은 FF를 샀다. 그때 단순한 장사꾼이 아니라 마음을 다하는 세일즈 컨설턴트라는 확신이 생겼다고 한다.
드림카를 파는 남자의 드림카가 궁금하다
페라리 입사 전에는 M3이었다. 데일리카로 탈 수 있는 퍼포먼스카라는 점 때문이다. 얼마 전 구매해 타는데 성능과 실용성 모두 만족스럽다. 페라리 중에 탐나는 모델은 단연 FF다. 4인승과 네바퀴굴림이 주는 실용성과 뛰어난 무게배분이 인상적이다. 상식을 깨는 슈팅브레이크 디자인과 페라리의 자랑 V12 엔진도 마음에 쏙 든다. 페라리 하면 458이나 488 같은 미드십 슈퍼카를 떠올리는 탓에 새로운 콘셉트로 나온 FF 판매량이 비교적 높지 않았다. 덕분에 희소성이 높다. 국내에서 저평가된 모델이기 때문에 더 탐난다. 가격대비 만족도로 이만한 차를 찾기 어렵다.
지금 전시장에 있는 페라리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모델은?
당연히 FF이지만 아쉽게도 현재 들어온 차가 없다. 쉽게 볼 수 없는 한정판 모델 458 스페치알레가 가장 마음에 든다. 국내 판매 대수도 아주 적었고 신차 판매 때보다 지금 더 인기가 높다. 최근 소장 목적으로 458 스페치알레를 찾는 페라리 오너가 크게 늘었다.
친절해야 하는 직업이지만 스트레스받는 순간도 있을 법한데
일하면서 가장 공들이는 부분이 정산이다. 차 가격이 워낙 고가여서 숫자 하나만 틀려도 일개 직원이 감당하기 힘든 엄청난 문제가 생긴다. 작은 실수도 하지 않도록 계속해서 검산하고 꼼꼼히 확인한다. 매달 정산 때마다 극도로 예민해진다.
그밖에 일하면서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은?
내 이름 앞에 붙는 ‘페라리’라는 수식에 부끄럽지 않도록 자신감 넘치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상위 0.1% 고객을 상대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이 최고 매너로 응대하려 한다. 차를 넘길 때 나만의 의식을 치르는데, 미리 뗀 번호판을 출고 직전 고객 앞에서 단다. 중고차를 판매하지만 고객이 인도받는 순간만큼은 신차 못지않은 감동을 주고 싶어서다. 페라리가 주는 형언할 수 없는 설렘과 기대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업무상 신조는?
미국 작가 지그 지글러가 남긴 말을 매일 가슴에 새긴다.
“누군가를 위해서 일할 때는 진심으로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