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차발표회는 화려하다. 많은 이들이 참석하고 자동차회사가 전달하고 싶은 신차의 핵심정보를 짧은 시간 동안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장이다. 하지만 부족하다. 꼼꼼히 들여다보고 만든 이들의 의도를 파악하거나 개발 뒷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노고를 조금이나마 헤아리기엔 턱없이 짧은 시간이다. 지난 14일 신형 쏘나타 개발자들을 만나기 위해 경기도 화성시 소재 현대기아자동차남양기술연구소를 방문한 이유다.
▲ 과거 자동차전문지에서는 신차개발 실무진들이 전하는 개발스토리를 자주 접할 수 있었지만 요즘은 찾아보기 어렵다. 모처럼 기회가 마련된 것은 최근 현대차그룹이 강조하는 변화와 소통의 일환이다
우선 DN8 쏘나타 개발 전체 과정을 관리한 프로젝트 매니저(PM) 손병천 책임연구원에게서 포괄적인 이야기를 들어봤다.
19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쏘나타의 시작은 한국자동차 역사의 큰 부분이자 현대자동차의 역사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명실공히 현대차 대표차종인 쏘나타 8세대 모델 개발에 나선 연구진은 과거 쏘나타가 짊어졌던 모든 통념에서 자유롭고자 했다. 아빠차, 국민차 등 수식어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름 빼고 다 바꿨다.
새 쏘나타는 현대차 브랜드의 미래를 알리는 시작이다. 처음으로 3세대 플랫폼을 적용했고 차세대 파워트레인을 탑재해 성능 경쟁력을 확보했다. 디자인도 완전히 새롭다. 현대차가 추구하는 새로운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가장 먼저 선보인 양산 모델이다. 상위 모델조차 적용하지 않은 신기술도 과감히 도입해 현대차의 브랜드 위상을 높이고자 했다.
20대부터 70대까지 고객층이 폭넓고 대중적인 쏘나타지만 6세대(YF)에서 한 걸음 물러난 7세대(LF) 디자인으로 인해 젊은 고객들의 이탈이 있었다. 새 쏘나타는 디자인, 파워트레인, 핸들링 등 모든 개발의 기준이 되는 목표 고객층을 1980년대초~2000년대 초반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로 잡았다. 이들은 개인의 가치를 높이 평가해 가격이 비싸더라도 만족도 높은 제품(일명 ‘가심비’)을 선택하고 상호연결성과 사회적 소속감을 중시하며 스마트폰 활용빈도가 굉장히 높다. 이런 성향으로부터 짚어낸 쏘나타 개발 방향은 고급 감성, 스마트폰 사용자경험(UX), 개성표출의 세가지로 요약된다.
“보닛의 크롬 장식 일부가 점등되는 히든 라이팅 램프는 위장막을 벗기기 전 마지막 순간까지 감췄던 비밀이다. 안쪽 렌즈에 넣은 크롬의 레이저 가공 밀도 차이로 낸 효과인데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만들기 위해 타공 패턴을 수천 번 바꿨다. 어려움이 많았지만 반응이 좋아 뿌듯하다.”
고급 감성에 대한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향상된 감성품질은 물론 고급스러운 주행성능도 필요했다. 이를 위해 역동적인 주행성능과 고속주행 및 장거리 주행시 편안함을 개발 목표로 잡았다. 실내에는 LF때 없었던 대시보드(크래시패드) 인조가죽감싸기, 앰비언트 무드램프, 전자식 버튼 변속장치, 그랜저에서 호응을 얻은 동승석 릴랙션 컴포트 시트를 추가했다. 스마트폰 UX, 개성표출과 관련해서는 스마트폰과 연계된 단순하면서도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를 채용하고 신기술들을 끌어들였다.
현대 디지털 키를 처음 적용했고 12.3인치 디지털 계기판, 12.25인치 내비게이션 화면, 스마트폰 제어 원격 주차지원, 빌트인캠을 과감히 도입했다. 헤드업디스플레이도 중형차엔 처음 넣었는데 성능이 상위 모델 못지 않다. 이외에 에어컨 오토 모드 선택 시 선호하는 바람세기를 설정할 수 있는 3단 제어 오토 블로워, 공기청정모드 버튼 추가 등 새로운 부분이 많다.
▲ “스마트폰 제어 원격주차지원은 특히 여성 고객 반응이 좋다. 좁은 주차공간에서 문콕이나 오물이 묻는 일을 피할 수 있고 카시트에 아이를 태울 때도 효용이 높다.”
외관디자인은 한눈에 쏘나타임을 알 수 있도록 차별화했다. 혁신적이고 역동적인 디자인은 3세대 플랫폼과 관련 깊다. 지붕 높이를 30mm 낮췄지만 실내공간이 좁아지지 않도록 파워트레인과 차체 바닥면, 트렁크 공간을 낮추고 휠베이스와 길이를 35mm 늘렸다. 실내 여유공간은 LF와 동등하다. 이전보다 길고 낮고 넓어진 차체는 역동적인 느낌을 줄뿐 아니라 고속주행 안락함에도 기여한다.
ADAS(첨단 운전자 지원 시스템) 현대 스마트센스는 기능에 따라 (보편적) 안전사양과 (선택적) 편의사양으로 구분하는데 차의 출발부터 주행, 주차까지 시나리오를 갖고 개발했다. 쏘나타에는 8가지 스마트센스 기능이 있다. 이 중 전방충돌방지보조(FCA), 차로유지보조(LFA), 차로이탈방지보조(LKAS) 등 안전사양은 모든 트림에 기본으로 넣었고 편의사양도 낮은 트림까지 확대해 선택권 넓혔다.
▲“차로유지보조 기능은 고속도로주행보조(HDA)와 매칭돼 고속도로 주행시 스티어링휠을 잡지 않아도 오랫동안 주행 가능하다. 대시보드 왼쪽의 LKAS 버튼뿐 아니라 스티어링휠의 LFA 버튼까지 눌러야 활성화되도록 로직을 이원화했다.”
이처럼 완전히 달라진 쏘나타를 만들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모든 것을 새롭게 해야만 했다. 플랫폼패키지개발팀 양동수 책임연구원은 3세대 플랫폼의 역할을 설명해줬다.
우선 ‘센슈어스 스포트니스’라는 현대차의 새로운 디자인 철학을 반영하기 위해 플랫폼에도 큰 변화가 요구됐다. 프론트 오버행을 줄이고 엔진룸의 후드라인을 낮추며 카울포인트(후드와 앞유리가 만나는 부분)을 뒤로 상당히 밀어내야 했다. 역동적인 비례를 위해 지붕을 낮추고 휠베이스와 리어 오버행을 키우며 19~20인치 대구경 타이어를 장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전체적인 변화가 동반됐다. 요구조건들을 플랫폼에 반영하기 위해 실내공간에서 탑승자가 앉는 위치를 낮추고 엔진룸 핵심인 파워트레인 기준위치를 뒤로 이동했다.
새로운 디자인의 비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엔진룸 공간이 작아져야 했다. 그럼 충돌 시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는 공간이 줄기 때문에 이를 상쇄할 수 있는 다중골격구조를 적용했다. 이전처럼 메인사이드멤버가 충돌에너지 전달을 도맡지 않고 서브프레임, 펜더에이프런과 나눠 부담한다. 정면, 측면, 옵셋 등 다양한 충돌 모드에서 유리한 구조다. 차체구조만 새롭게 개발하는 게 아니라 파워트레인 배치, 스마트스트림 엔진까지 융합적으로 개발하고 통합해야 했다. 엔진룸의 열 유동도 좁은 엔진룸 공간에서 조화롭게 구현되도록 라디에이터를 통과해 하부로 빠져나가는 공력 구조까지 처음부터 콘셉트를 잡고 최적화했다.
“엔진룸을 더 작게 만들면서 다중골격구조와 파워트레인을 하나로 통합하는게 사실 아주 어렵다. 정말 변화와 소통을 필요로 했다. 각부서 연구자들이 함께 밤을 새면서 많은 협업을 했다. 그 결과 경쟁력이 크게 높아졌다.“
플랫폼 개발 과정에서 중요시한 한가지는 (나는 귀를 의심했다) 운전 즐거움이다. 다중골격구조에도 불구하고 경량화를 동시에 실현했을 뿐 아니라 관성제원과 중량배분을 신경 썼다. 파워트레인, 배터리를 뒤로 옮겼고 하이브리드 모델은 고전압 배터리를 뒷좌석 아래로 옮겨 휠베이스 안쪽, 즉 차의 무게중심에 가깝게 배치했다. 이를 통해 주행 특성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롤센터를 낮췄다. 이밖에 하드포인트 개선과 서스펜션 지오메트리 최적화를 통해 운전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주행성능 기본기를 갖췄다.
쏘나타 주행성능 중 라이드(승차감), 핸들링, 조향 부분 개발을 담당한 R&H 성능개발2팀 김제형 파트장이 설명을 이어받았다. 기존 쏘나타는 패밀리카에 치중해 제약이 있었지만 8세대는 과거 쏘나타가 짊어졌던 모든 통념에서 자유롭고자 한 결과, 라이드, 핸들링 면에서도 ‘펀 투 드라이브’를 추구할 수 있었다.
▲ “패밀리카 수요는 SUV로 넘어갔다. 이제 승용차, 세단은 주행성능에 대한 기대치를 만족시킬 수 있도록 자기 자리를 찾아가야 한다. 알버트 비어만 사장도 향후 승용차가 가야 할 방향으로 펀투드라이브를 강조했다.”
그가 플랫폼 개발에 참여해 주행성능의 기본기를 높일 수 있는 지오메트리를 설정하면서 주안점을 둔 것이 다름아닌 응답성 향상이다. 프론트 서스펜션은 암 배치를 통해 범프 스티어를 축소하고 스텝바 링크 마운팅 변경을 통해 롤스티어를 개선했다. 조향장치도 큰 발전을 이뤘다. 애크먼 효율을 축소시켜 모터 부하를 줄임으로써 조향 기어비를 높일 수 있었다. C-MDPS임에도 LF 일부모델의 R-MDPS와 동일한 기어비다. 이와 함께 기어박스 마운트 위치를 높이는 등의 개선으로 좀더 역동적이고 직결감을 주는 조향 시스템을 만들었다.
리어 서스펜션은 차의 응답성이 많이 높아질 경우 불안한 요소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억제할 수 있는 지오메트리 배치에 신경 썼다. 범프스티어, 롤스티어 증대로 안정성을 확보했다. 한편 뒷바퀴 응답이 앞바퀴 응답을 쫓아가지 못하면 차가 크고 둔하게 느껴지는 만큼, 플랫폼 설정시 롤센터를 낮춰 좀더 역동적인 성능을 구현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응답성 개선과정에서 차의 강성감이 부족하면 섀시와 보디가 따로 움직이는 현상이 생긴다. 그래서 앞쪽 서브프레임 마운트와 크로스멤버 후방부에 브라켓을 추가해 강성을 보강했다.
▲ “편안한 승차감을 우선시하는 이들은 우리 핵심 고객이 아니다. 생김새에 걸맞게 승차감이 다소 단단하더라도 확실한 제어가 되는, 운전자로 하여금 자신이 제어하고 있다는 느낌과 신뢰감을 주는 차를 만들고 싶었다. 솔직히 역대 쏘나타중 가장 재미있는 차다.”
처음부터 차의 응답성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다 보니 3세대 플랫폼에서 이미 기본적인 핸들링과 조향 성능을 달성할 수 있었고, 이런 기본기 덕분에 승차감을 튜닝할 여지도 많아졌다. 리어 쇽업소버를 LF보다 더 수직에 가깝게 세워(패키지 구성상 상당히 어렵다) 효율을 높인 게 한가지 예다. 덕분에 차체 제어와 승차감을 동시에 개선할 수 있었다.
현대차 대표 모델답게 쇼크업소버에 새로운 밸브 기술도 적용했다. MVS 보디밸브와 차세대 PLD2 피스톤밸브로 구성된 새 밸브는 쇼크옵서버 작동음을 부드럽게 해 고급스럽고 견고한 승차감을 완성하고 튜닝 자유도를 높이는 장점이 있다.